설교/칼럼

제목수필-이창, 증경총회장 갈릴리순복음교회 원로2011-04-14 11:44
작성자 Level 8

지팡이 짚고 가는 한 노인!

개척교회 때의 일이다.
심방을 가는 중에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석양녘에 해 그림자를 등지고 꾸부정한 허리를 지팡이 하나에 싣고 피곤하고 지친 듯 수많은 인생들이 거쳐 간 아무도 없는 텅 빈 길을 혼자 가고 있었다. 지팡이가 없으면 폭삭 앞으로 꼬꾸라져 코를 땅에 묻고 숨이 끊어질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꾸부정하고 초췌한 뒷모습에 고독의 그림자가 먹구름처럼 매달려 있다. 마음에 진한 전류가 흐르면서 불쌍해하는 눈물이 아리아리 잦아든다. 아내와 나는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공감한다. 아내가 다가가 전도를 한다.

  “할아버지, 예수 믿으세요!”

  노인일수록 예수님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인이 예수 믿지 않는 걸 보면 얼마나 아찔한가! 늙어 주체 못하는 몸뚱아리도 고통인데 거기다가 세상 떠나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노인은 다행히 ××교회에 등록되어 있는 성도라고 했다. 그런데 다리가 아파서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며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불쌍해서 길에 선 채 아내와 둘이 기도해 주었다. 그랬더니 울며 자기 집에 가서 예배를 드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의 집에 함께 기거했는데 가족이 많아 작은 아파트를 사서 노인 혼자만 따로 산다고 했다. 밥은 며느리가 아침에 갖다 주면 하루 종일 그걸 데워 먹는다는 것이었다. 아들도 손자도 담임목사도 이젠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며 울었다. 과거 학교 교장까지 지냈던 75세의 노인이었다.

타 교회 교인을 심방하면 본 교회에서 알게 될 경우 그 교회에 상처를 줄까봐 조심스러웠으나 하도 간곡히 부탁하므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해 주었다.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못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중환자에게 직접 찾아오신 예수님이 노인에게도 찾아오신다고 얘기했다. 설혹 아들 손자는 찾아오지 않아도 예수님은 꼭 찾아오신다고 했더니 눈물고인 노인의 눈에 영롱한 빛이 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예배 끝난 후 아내가 사탕 한 봉지를 사다가 심심할 때 입에 넣으시라고 드리고 왔다. 노인이 저만치까지 따라 나오며 잘 가라고 몇 번이나 손을 흔들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노인들의 고독이 절절이 절절이 가슴을 적셔왔다. 물론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늙고 병든 부모에게 자녀들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하나님이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이 노인은 이제는 가족들을 바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때 묻은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황혼녘의 산 그림자에 덮여오는 남은 여생을 가고 있다고 느꼈다. 자녀들이 있건만 그 자녀들이 그의 늙음을 버텨 주지 않음으로, 겨우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천덕꾸러기처럼 떨리는 다리 떼 놓으며 혼자 남은 길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슬픔이 있고 고독이 있고 절규가 있고 비극이 있다. 사랑이 부모까지 외면할 정도로 고갈되어 있는 시대인가!

  “지팡이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짚고 인생 길 가세요!”

  지팡이를 마지막 보루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아까 예배드리면서 그렇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모세도 지팡이 하나 짚고 광야 길을 걸어갔는데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상이었다. 그와 같이 이 노인도 지팡이 짚고 가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지팡이 짚고 가는 한 노인의 쓸쓸한 그림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