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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목양논단-안기호 목사 D. Min2013-11-21 14:17
작성자 Level 8

비유(比喩, parable)

성경의 말씀은 단순한 글자나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써 세상과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으며, 이 세상에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은 하나님으로 계셨으며,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요1:1-3,14).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당신을 나타내시고, 그의 백성과 대화를 나누신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계시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당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는 계시행위는 은혜와 진리라는 두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말씀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담겨 있는데, 은혜는 사람을 거듭남으로 이끌고 진리는 변화로 이끈다. 은혜로 거듭나고 진리로 변화되는 과정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안에 새겨지는 과정이다.

계시는 글자의 몸을 빌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때 계시와 인간이 만나는 언어는 비유라는 형식을 입고 있다. 말씀이 비유의 형식을 빌어 인간에게 다가옴으로써 인간이 보고 듣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글자의 몸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시78:2).

비유(比喩)는 한 마디로 암시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야기 형태”를 의미하며, 신앙적으로는 그 안에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영적 진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짤막한 풍유적 이야기" 혹은 "영적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사용하는 간단한 이야기" 혹은 "영적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실들을 사용한 일종의 이야기 형태로 알려진 예화, 비교, 유추“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종합해서 비유의 정의를 내린다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상적인 경험이나 상상에 기초하여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으로써 이 둘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고안해 낸 길거나 간결한 여러 가지 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마13:3-9)에서 씨와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인데, 이 둘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잘 알려진 씨를 통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천국을 설명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비유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마샬’(mashal)과 ‘히다’(hidah)가 있으며, 마샬이 주로 사용된다. 아람어로는 마틀라(mathla)라는 단어가 비유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람어로 비유들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성경을 기록하면서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마틀라’를 파라볼레(παραβολ&;#942;, parabolle)로 번역하여 기록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에서도 ‘마샬’을 ‘파라볼레’로 번역하였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들은 모든 종류의 비유들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라볼레(παραβολ&;#942;)는 영어의 ‘with’(...와 함께, ...와 같이, ...에 관해서), ‘by’(...에 의하여, ...으로, ...의 가까이에, ...옆에, ...곁에), ‘nigh to’(...가까이에)와 같은 의미를 가진 전치사 ‘파라’(παρ&;#940;)와 영어의 ‘to throw’(던지다, 제시하다), ‘to put’(놓다, 두다, 가까이 하다, 나란히 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발로’(β&;#940;λλω. ballo)의 합성어로써 ‘옆에 던지다, ...가까이 던지다, 가까이 놓다’라는 말이며, 어떤 것 옆에 어떤 것을 제시하여 대비시키고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새롭고 독창적인 내용과 형태의 비유들을 사용해 하늘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처음으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 원형은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삿9:7-15, 삼하12:1-4). 따라서 우리는 구약에서 사용된 ‘마샬’이라는 단어의 용법을 통해서 ‘비유’의 의미를 보다 깊이 관찰해 볼 수 있다.

‘마샬'은 속담, 잠언, 격언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삼상10:11-12, 삼상24:13, 겔16:44, 겔18:2).
‘마샬’은 조소, 조롱, 우롱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사14:4, 합2:6).
‘마샬’은 수수께끼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겔17:2, 시78:2, 시49:4, 잠1:5-6).

이처럼 ‘마샬’은 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마샬’의 헬라어 번역인 ‘파라볼레’ 역시 비유라는 한정된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고, 속담ㆍ잠언ㆍ격언ㆍ수수께끼 등의 보다 넓은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눅4:23).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비유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장르의 비유 형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알레고리{allegory, 우화(寓話) 또는 풍유(諷諭)}

알레고리의 유의어는 우의(寓意, 우화) 또는 풍유이다. 영어사전에는 알레고리가 “풍유, 비유, 우화, 비유담” 등으로 광범위하게 해석되어 있고, 국어사전에는 알레고리가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으로써 주로 도덕적, 교훈적, 풍자적 내용을 표현할 때 쓰인다”고 정의되어 있으며, 백과사전에는 “알레고리는 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으로, 주로 문학에서 사용된다. 때론 우의, 풍유로 불리기도 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어원적으로 볼 때, allegory는 헬라어 알레고리아(all&;#275;goria)에서 유래하였다. 알레고리아는 ‘다른’이라는 뜻을 지닌 알로스(allos)와 ‘말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아고류에인(agoreuein)의 합성어로써 “어느 사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에 의해서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의미하며, 이 표현방법에 의해서 창작된 문학 작품이나 조형예술작품을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라고 한다. 우화는 하나의 명확한 교훈을 가진 짧은 알레고리로 들 수 있다. 문학에서 알레고리의 가장 단순명쾌한 일례는 <;이솝의 우화>;이다. 그의 <;우화>;는 단순히 표면상에 나타난 의미로 이해하는 동물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포함된 교훈이다. 이솝은 동물이야기의 형식을 취하면서 인간존재의 여러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이다.

다만, 알레고리는 그 상세함에서 은유보다 길게 지속되고 더 충만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유추가 이성이나 논리에 호소하는 데 반해 알레고리는 상상에 호소한다. 일반적으로 은유가 단어나 문장에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알레고리는 우화처럼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훨씬 큰 범위를 지닌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은유가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인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즉, 알레고리는 은유의 연장으로서 이야기(narrative) 형태로 정리된 것이다. 「율리허」(Adolf Julicher)는 알레고리를 좁은 의미에서의 비유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우화 내지는 풍유와 같은 알레고리 형식의 표현은 나타내고자 하는 원관념을 문장에 직접 나타내지 않고 비유되는 이야기&;#8226;속담&;#8226;격언 등으로써 본뜻을 짐작하여 알 수 있게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이때 이야기 구조를 구성하기 위하여 도입된 유의(喩義)는 문장 전체를 채우고 본의(本義)는 추측을 통해 알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등과 같은 표현으로써 성경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와 같은 표현을 들 수 있다.

2. 은유(隱喩, metaphor)

metaphor는 은유, 암유, 상징 등으로 번역된다. 국어사전에는 은유란 말이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일. 대상을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에, 상대에게 대상을 낯설게 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원관념{본의(本義)&;#8226;사물 : 본디 표현하고자 한 것}과 보조 관념{유의(喩義)&;#8226;상관물 : 본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가지고 들어온 것} 사이의 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의 관계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는 것이다.” 등으로 정의되어 있으며, 백과사전에는 “다른 두 가지 대상을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비교하는 방법.” “……같이, ……처럼 등의 말을 써서 명백한 비교를 드러내는 직유(直喩)와 구별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는 표면상으로는 비유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수사법으로써 “A(원관념)는 B(보조관념)다”의 형태로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성경에서 “독사의 자식들”(마3:7),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요6:51), “양의 문”(요10:7) 등의 표현은 은유에 속한다.

3. 직유(直喩, simile) 또는 확대직유(擴大直喩, enlarged or expanded simile)

직유는 자연현상이나 일상생활에서 나온 비유로써, 원관념을 보조관념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수사법이다. “같은, 처럼, 듯이, 마치, 흡사, 양” 등의 연결어를 사용하여 비슷한 성질이나 모양을 가진 두 개의 사물을 직접 비교하는 방법으로써 비유법 중 형식이 가장 간단하고 분명하여 이해하기가 쉽다. 예를 들면,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떼 속으로 보내는 것과 같다”(마10:16), “하늘나라는 어떤 여자가 한 포대의 밀가루에 섞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마13:33)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시42:1) 등의 표현이다.

확대직유는 직유를 확대시킨 것으로 매일 일어나는 사건 혹은 잘 알려진 진리나 사건에 근거하여 비슷한 것을 제시하여 상상력을 갖게 하며,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 위에 있는 마을은 잘 보이기 마련이다”(마5:14),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7:9-10)와 같은 표현들이다.

「린네만」(E. Linnemann)은 확대직유는 실재(reality)와 밀접하게 연관된 전형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간략하게 구성되며, 사건(event)과 실재를 연관시켜 보편적인 상황을 묘사한다고 했다.

「불트만」(Bultmann)은 확대직유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① 확대직유는 간결하고 말이 매우 적으며, 필요한 인물만 등장한다. 탕자의 비유에서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았고,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에서도 빵을 꾸어준 집의 아내가 기록되지 않았다.

② 확대직유는 단 하나의 국면만 설정된다. 탕자의 비유는 탕자의 관점에서만 전개된다.

③ 확대직유는 어떤 속성에 의한 인물묘사가 거의 없다. 또한 감정이나 동기는 필연적일 때만 언급되고, 감정은 간접적으로 묘사되거나 청중의 상상에 맡긴다. 2차적 등장인물도 불가피한 경우에만 묘사된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여행자나 여관 주인에 대한 설명이 없다. 탕자가 상속을 요구하고 먼 나라로 여행한 동기가 기록되지 않았다. 포도원 품꾼들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이 왜 다섯 번이나 장터에 나가서 품꾼들을 데리고 왔는지 기록되지 않았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의 여행 목적이 밝혀지지 않았다.

④ 확대직유는 결론이 명백하거나 무관할 경우 그것이 기록되지 않았다. 어리석은 부자가 그날 밤에 죽었는지, 불의한 청지기가 영수증을 받았는지, 선한 사마리아인이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더 주었는지, 강도 만난 사람이 곧 회복되었는지, 알 필요가 없고 그것들은 비유의 핵심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았다.  

⑤ 확대직유는 사건과 행동에 대한 표현이 극소화된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어떻게 애원했는지 기록되지 않고, 애원했다는 사실만 간단히 기록되었다.

⑥ 확대직유는 직접화법으로 독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탕자, 불의한 청지기, 불의한 재판관, 어리석은 부자, 포도원의 악한 소작인들 그리고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 비유에서 악한 종은 독백했다.

⑦ 확대직유는 반복해서 말을 한다. 용서하지 않는 종 비유에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그러면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마18:26,29)라는 말이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탕자는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눅15:18,19,21)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왕자의 결혼잔치에의 초대 비유에서 초대 받은 사람들이 “용서하십시오”(눅14:18,19)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핑계를 댔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다른 길로 지나갔다(눅10:31,32).

⑧ 학대직유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마지막에 기록된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부자가 먼저 기록되고 나사로가 그 다음에 언급되었다(눅16:19-21).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세리의 기도가 마지막에 기록되었다(눅18:13).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 대한 내용이 마지막에 기록되었다(마25:24-30).

⑨ 확대직유는 인물에 대한 도덕적 평가나 청중의 판단도 기록하지 않았다. 불의한 청지기(눅16:1)와 과부의 애원을 성가셔서 들어준 재판관(눅18:5)은 비도덕적인 사람이었지만 엄한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았다.

4. 상징(symbol)

상징은 어떤 사물(혹은 예)을 들어 영적인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다만, 비유가 두 관념 사이의 공통성과 유사성에 기반을 두는 것과는 달리, 상징은 원관념의 형태를 드러내지 않고 감각화된 보조관념만으로 함축된 의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특이하다. 따라서 비유에서는 원관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상징에서의 원관념은 암시성과 모호성이 더 강하다. 성막을 현재를 위한 모형(히9:9)으로 설명하는 것이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것에 대해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히11:19)는 말은 상징에 속하는 비유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5. 구상어(figurative speech)와 예화(例話, illustration)

추상어(抽象語)가 “사랑, 평화, 자유” 등과 같은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말을 의미한다면, 구상어(具象語)는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모습을 갖춘 구체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말”을 의미한다.

예화는 예로 들어서 하는 이야기, 즉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이야기 형식이다. 이것은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 실린 이야기 내용을 보다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그 이야기 옆에 그림을 끼워 넣는 삽화처럼, 영적 진리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이야기 형태로써 일종의 예시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