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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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목사, “십자가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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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10:49

“십자가 외에는”   

본문: 고전2:2 
안동성곡교회  강태진 목사

최근 우리 사회에 꽤 유명한 사람들이 자살로 삶의 고통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몇 일전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접하자 아연 실색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나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다 해도 지혜롭지 못한 선택입니다. 이런 사례가 베르테르의 효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죽음은 절대로 삶의 끝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헛됩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5:16-19)


'내가 죽는 날'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이르니' 찬송을 불러주오
또 요한계시록 20장 이하를 끝까지 읽어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는 이것을 새겨주오
"임마누엘" 단 한마디 말을

내가 죽은 날은
비가와도 좋다
그것은 내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하고
하늘나라 올라가는데 내 길을 준비함이라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원히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저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리라.

오! 내가 죽는 날
나를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부르시는 날
나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오직 주님의 뜻이면
이 순간에라도 닥쳐오기를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내가 옮겨진 그 나라에서만
내 소식 알 수 있을 터이니
내 얼굴 볼 수 있을 터이니


 
인간이 당면한 문제는 사람마다 환경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문제를 하나로 봅니다. 그것은 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죄는 모든 불행의 뿌리요, 모든 비극의 뿌리요, 모든 고통의 뿌리입니다. 그것은 마치 날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고질병과도 같고 또한 죽음에 이르는 병과도 같습니다. 죄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며 가정을 파괴하며 국가를 좀먹고 마침내 자신을 영원한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맙니다. 죄를 알면 죄란 인간이 치료할 수 없는 최악의 바이러스입니다. 어떠한 철학자도, 사상가도, 교육가도, 정치인도, 종교인도 죄 문제를 해결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죄와 사망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는 유일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현대인의 번역, 롬8:3)
성경을 죄 문제를 해결하는 책입니다. 그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성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창조된 인간의 죄짓기 전의 모습이 기록된 창세기 2장까지와 범죄한 이후의 모습을 창세기 3장 이후의 기록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래서 정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다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6-19) 결국 죄가 인간 비극의 원흉입니다.
죄란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에 거역하면서 오히려 대듭니다. “내가 무슨 잘못했냐?” 자기 기준에서는 자기가 옳지만 부모의 기준에서는 틀린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의로우신 하나님의 기준에서 빚나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죄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6-9)
우리는 과거에 죄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비로소 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비극의 뿌리와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인간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망합니다.
상대적으로 착한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하나님처럼 의로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하심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고후5:20-21)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고후5:19)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목회자의 고백이요 성도의 고백이 된다면 교회는 비로소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