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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철 목사, 광풍이 몰아칠 때 (눅 8: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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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10:23

광풍이 몰아칠 때 (눅 8:22-25)

광장교회 양재철 목사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뜻하지 않는 큰 광풍을 만나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광풍은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지 아니함으로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일생을 예수님 없이 살다가 만나는 광풍이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했으면서도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여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만나는 광풍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과 경험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따라갈 때 만나는 광풍이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을 다하지 아니하고 이를 피할 때 만나는 광풍들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도 본문 말씀에서 제자들이 만난 광풍과 같이 믿음을 저버리고 살다가 만나는 광풍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크고, 더 뼈아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광풍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축복 안에 살기 위해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부요할 때나 빈곤할 때를 막론하고 항상 믿음에는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성장해 나가야만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그날의 매상이 올라가면 믿음도 순간적으로 올라가고, 매상이 떨어지면 믿음도 뚝 떨어지고 만다면 이는 신앙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고 있으면 영적생활,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물질 속에는 우리들의 참된 믿음을 좀먹는 자기중심적인 탐욕과 이기주의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눅 12:22-23)”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누가복음 12장 24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물질에 치중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로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할 때에 광풍과 세상의 염려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축복 안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허다한 사람들이 사업에 성공했다고 하면서도 풍부한 물질 속에서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며 죽어갔습니다. 이는 물질이 만능이 아니며 전부가 아니고, 물질이 절대로 영적 세계를 지배할 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동안 물질적인 생활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다소를 불구하고, 물질을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정리하고 믿음의 양식으로 만족할 때, 물질의 참가치는 빛을 발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편 3: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고백은 오직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며,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실 분은 오직 여호와뿐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할 때 광풍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축복 안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1년 365일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사랑과 인자하심이 풍부하시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고 돌보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슨 일이라도 해결해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사랑의 주님, 능력의 주님을 믿고 나아갈 때 담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말씀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바로 그 때 두려움은 분명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을 할 때, 그대로 주님만 믿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동안에는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눈을 돌려서 광풍을 바라볼 때 예수님께 향했던 믿음이 약해지고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께서는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의심이란 주님을 믿는 믿음과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았다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겠지만 한 눈으로는 주님을 보고 한 눈으로는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맡은바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은 어디에서인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릴 때까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맡은 바 사명을 다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다 하기 전에 그 사명을 피하고, 그 사명에서 도망가고 피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광풍 속으로 인도하십니다.
마치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외치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갈 때에 하나님은 저를 큰 광풍 속에 넣어 회개케 하시고, 구원하신 후, 그의 사명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어 예비하신 사명은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은 꼭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우리 주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이와 같은 큰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의 간곡한 부탁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어두움의 권세 아래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육신은 살아 있어도 참된 삶이 없는 죽은 것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캄캄한 세계를 향하여 높고 찬란히 빛나는 눈부신 십자가의 용서와 구원의 빛을 비추어 줌으로써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믿음을, 이삭은 참는 믿음을, 야곱은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들은 굳건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는 믿음이야말로 광풍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안에 살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