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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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하 목사, 우리의 자랑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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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6:38

우리의 자랑 십자가(갈6:14)
                                                         
순복음만민교회 박수하 목사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갈라디아서 6:14)

사순절 기간입니다.
존귀하신 주님께서 우리 죄인을 구하시려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로 인하여 용서를 배웠고, 사랑을 배웠고, 겸손을 배웠고, 인내를 배웠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복됨을 알게 되었고, 자랑과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음인가를 배웠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흉악한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형틀이었지만, 예수님 이후로 십자가는 기독교의 자랑이요, 영광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요약이 ‘십자가’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서 순교하므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삶은 우리 모두의 길이요,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요, 기도제목입니다.
‘십자가’는 건물에도, 왕관에도, 가슴에도, 강단에도, 강대상에도, 헌금함에도, 양복 깃에도 있습니다. 새로 지은 어느 교회당의 십자가는 색깔이 천연색으로 변하여 한참 동안을 쳐다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는 대형 십자가를 세워 놓았습니다. 시골에서 목회 할 때 이웃교회 집사가 장로가 되었습니다. 금테 안경에 양복 깃에 금 십자가 뺏지가 달려 있던 모습의 그 분이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집사 때 보다 허리 각도가 좀 높기는 했습니다.
십자가는 상, 하 +좌, 우로 연합입니다.
세로(ㅣ)는 강한 자, 성공한 자, 가진 자, 잘생긴 자, 건강한 자,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경우일 것이고, 가로(ㅡ)는 약한 자, 실패한 자, 못가진 자, 못생긴 자, 병든 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위치일 것입니다.
분리될 때 비극이요, 하나 될 때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1. 자신의 십자가

바울 사도는 당시 엘리트 계급에 속한 자로서 존경받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 해박한 지식, 로마 시민권자로서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위치임에도 주님의 사명을 받아 온갖 고생과 멸시, 끝내는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고백합니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면류관을 주실 것”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와 희열에 넘쳐 있음은 그가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왠 만큼 교회가 성장하면 일부이지만, 십자가 없는 삶을 사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지탄을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깨우쳐 주는 도구로 삼아야겠습니다.
다윗왕도 십자가를 이룬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도 권세 있는 자리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려운 유대인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그 분이 편안한 목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버리고 한국교회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그 분의 손자뻘 되는 형제를 알게 되었는데 친척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적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비참하게 죽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인 손양원 목사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랑의 목회자 손 목사님은 여러 목회자들이 설교에 인용하지만 정작 목사님 가족은 고생과 무관심과 멸시에 큰 고통을 당했다고 합니다.
칭찬보다는 얼마의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일제시대 한국의 은인이었던 스코필드 목사는 “돈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겠습니다”,“사랑합니다” 입술로만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음을 반성해야 겠습니다.

2. 가정의 십자가

아담(ㅣ)과 하와(ㅡ)가 십자가를 이룰 때 행복했지만, 십자가가 파괴될 때  불행이 왔습니다.
형 가인(ㅣ)과 동생 아벨(ㅡ)도 십자가가 무너질 때 미움과 살인이 왔습니다. 아브라함(ㅣ)은 고아인 조카를(ㅡ)을 잘 보살피고 생명까지 구해 주었습니다. 이삭도 이방인들과 우물 문제로 분쟁을 피하고 십자가를 이루었습니다. 야곱도 삼촌과의 관계에서 십자가를 이루었습니다. 요셉도 형들과의 관계에서 형들은 십자가를 파괴했지만, 요셉은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3. 교회의 십자가

예루살렘교회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간에 십자가를 바로 세웠고 가진 자와 구제 받을 자들과의 십자가를 바로 세워 은혜스러운 교회가 되었고, 안디옥교회도 5명의 지도자들이 나이, 신분, 지식은 달랐지만, 연합하여 십자가를 바로 세우므로 큰 부흥과 최초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선교사들이 살기 좋은 조국을 떠나 가난하고 어려운 이 나라에 와서 십자가를 바로 세우므로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가진 교회와 미자립교회의 유대가 필요한 현실입니다.
수평이동으로 큰 교회가 형성되면 작은 교회 수십 개가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여리고 순하여 십자가가 지기 힘들어서 오는 양들을 본교회로 보내 십자가를 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 목회자를 소개합니다.
목회에 성공한 목사님이지만 아버님(장로)께서 고아원 사업을 하면서 고아들과 자녀들을 똑같이 먹이고 입히며 헌신의 삶을 본받아 목회에서도 욕심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찰장로”를 형님이라 호칭하고 사례금도 같은 액수를 받아 종종 예배기도 때 “더 이상 교인이 늘지 않게 해 주시고 다른 교회로 보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교회는 필요한 헌물을 하고 싶어도 동작이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고 합니다. 이미 다른 성도가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장애자를 위하여 훌륭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미소를 지으며 “기도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사 간 성도의 집에 이사 예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습니다. 평수가 다른 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평수 많은 아파트 부모들이 평수 작은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았다고 합니다.

결론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 기업, 사회 모든 분야에서 “ㅣ”에 속한 자들과 “ㅡ”속한 자들이 사랑하고 연합하여 이 땅에 십자가를 세울 때 주님의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세상의 소중한 빛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십자가를 세울 때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