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시론-이 시대에 목사로 산다는 것은2014-03-22 12:59
작성자 Level 8

⦃;이 시대에 목사로 산다는 것은⦄; 이억주 목사

(대석교회 담임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요즘처럼 내 자신이 목사라는 신분에 대하여 이처럼 조심스럽고, 또한 부끄러워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연일 이어지는 교회와 목사의 이야기꺼리는, 부질없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차라리 얼굴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다. 중세에 회자되던 사제복을 입었다고 다 사제가 아니다는 말처럼 목사라는 이름의 사람이라고 해서 다 목사는 아닌 시대가 되었다.

 

무슨 돈이 그렇게 목사들에게 많다는 것인지, 그게 사실이라면, 그 돈은 분명 성도들의 헌금이며, 결국 하나님의 재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윤리 기준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목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일들은 정말로 믿고 싶지 않다. 부정적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충격이다. 거기에다 부정한 일들의 폭로가 진정한 용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같은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한다.

 

이 시대에 목사란 누구인가? 목사로 산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가? 새삼 자문하게 된다. 목사는 하나님께 부름 받았을 때에 모세처럼 그 발에서 신발을 벗은 사람이고, 세상 속으로 보내졌을 때에, 자신은 없고 보내신 분만 나타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성도들의 성공과 행복이 자신의 행복처럼, 즐거워져야 하고, 성도들의 실패와 아픔은 자신의 탓으로 돌려, 함께 울어주고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며, 동시에 사람들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도들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복종을 목사에게 바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이는 교만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으로, 매우 두려운 죄악이다.

 

세상의 욕심, 자랑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멀리해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목사이다. 그래서 언제나 시계바늘처럼 하루 여명(黎明)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려고 집을 나서고, 어거스틴(Augustine)의 말처럼 그 영혼이 아침햇살처럼 맑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자신과의 싸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매일의 삶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삶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격려하며, 거역하는 이들도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불행한 시대를 희망으로 이끌며, 불협화음의 세상에서도 화합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영원불변한 진리를 전할 때에, 그 것을 삶으로 증거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늘 겸손과 사랑으로 행하고, 먼저 새롭게 배우며, 자신을 다잡아 보지만,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면 죄스러울 뿐이다.

 

목회자를, 자신들보다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자신들의 힘든 탄원을 대신 전능자에게 아뢰어 주기를 부탁하는 성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나 돌아보면 여전히 부족한 것뿐인데, 어찌하여 목사가 권력층처럼 보이게 되는 것인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미련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세상의 갈등을 모두 내 탓으로 돌려야 하는데 어찌해서 세상갈등, 분열의 한 가운데 서려고 하는지. 세상의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며 세상의 갈등을 끌어안아야 하고, 그래서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마음으로 세상의 불행이나 슬픔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사의 말은 진리를 전하는 것이기에, 그의 말은 천금보다 무게가 있어야 하고, 그의 행동거지는 부모님처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겸손과 사랑이 그들의 얼굴이어야 하는데, 위압과 교만의 모습은 진정 목사의 얼굴이 아니다.

 

늘 깊은 샘에서 솟아나오는 물처럼 신선하여, 희망으로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찾게 될 때에, 목사는 언제나 그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부패의 근원, 청산의 대상처럼 보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참담함이며, 그 현상에 대한 억울함이 있다.

 

목사는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목사는 성내지도 말아야 한다. 목사는 실수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들의 자녀는 모두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남다르다고 보고 있기에, 믿는 사람들의 눈길도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천상과 지상, 두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때에, 참과 거짓, 진리와 비 진리 중에서 늘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절대 진리를 따라 가려해도, 가변적인 세상의 가치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다.

 

목사는 혼돈의 시대에 작은 불빛이라도 되어야 하는 사람이며, 세상의 지친 영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되, 그들을 돌보아 주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위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영광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성도들에 비해 중간정도의 생활수준도 조심스런 일이며, 목사에게 재물이란 전적으로 복음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그 이상이 아니어야 한다. 목사가 남길 것은 복음의 열매이며 존경의 이름이지, 부동산이나 통장이 아니라는 것을 심비(心碑)에 새기고 살아야 할 일이다.

 

목사는 감출 것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유리로 만든 집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에게는 보통의 일이, 성직자에게는 일탈로 여겨지는 것인데, 이를 불평할 수도 없고, 오히려 스스로 지고가야 할 십자가로 여겨, 감사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사는 세상의 아픔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하고 나를 버려야 하는 사람들이며, 세파에 부대껴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싸매주고, 기쁜 일이 생겼을 때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 죄악을 무엇으로 속죄할 수 있겠는가.

거룩함(Holiness)과 명예심(Honor)과 정직함(Honesty)으로 살아가야 하는 길! 이 시대에 목사로 산다는 것이 왜 이리 무거운 짐이 되는지? 그래서 주님은 나와 멍에를 같이 지고 가자고 하셨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