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생명의 말씀-김정식 목사2013-07-25 09:19
작성자 Level 8

우리의 기도 생활과 예수님의 명령

마태복음 6:5-8

본문 말씀은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혹은 기도할 때마다”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너희들의 정한 기도 시간이 오면 이렇게 기도하라”는 의미의 고정된. 규칙적인 기도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말씀은 조건절 형식으로 씌어졌습니다. 따라서 “만일 너희가 기도하게 되거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하거나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기도는 다소 예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이따금 치르는 행사로서 한정된 상황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어째서 우리는 기도 생활 속에서 참된 존재의 본질과 우리 존재의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자신을 다그쳐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너무도 무기력하고 나태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짜증스러운 일, 기쁜 일, 그리고 내용 없는 바보 같은 신문 기사들은 기도할 마음을 빼앗고 기도를 우리 삶에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이제 기도가 더 이상 우리 삶과 가정의 터전이 아니요, 우리가 호흡하기를 원하는 그런 공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들의 근거지입니다. 폭발할 지경까지 우리 마음을 내리누르는 세상의 일들이 말입니다. 돈에 대한 걱정, 먹을 것에 대한 걱정, 주고받는 편지들, 동료들과의 불화, 자신의 직업과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초조감, 비좁고 답답한 집, 신경질적인 불안감, 초저녁 피곤한 우리를 엄습하는 졸음, 졸음을 억지로 참다가 사색과 성찰보다는 오히려 신경질이 발동되어 결국 설치고 마는 잠, 우리의 기력을 소진케 하는 이 세상, 늘상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세상, 이러한 세상이 우리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거지라 여기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안락함도 누리질 못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혼란스런 감정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세계가 낯설고 먼 곳으로만 여겨집니다. 그래서 간혹, 기도하고자 용기를 내어 정신을 집중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격리시키려할 땐, 추진력과 결단력 뿐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 또한 갖춰야 할 지경입니다.

더 짧아지는 기도 시간, 더욱 성급히 서두르는 기도 시간은 사실 하나의 짐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잠깐 동안 기도하려 할 때는 그리 힘도 들이지 않고 기도에 깊이 빠져들지도 않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어떤 평온함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급하게 서두르면서 짧게 끝마치는 기도는 그날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한 영적인 토대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irony)가 아닌가요? 짧은 시간이나마 기도의 시간으로 이용해 보려 했던 바로 그 합리적 수단으로서 결국 우리의 “합리적” 기도 생활을 그르치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경건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때 번제물에 조금의 흠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그 번제를 전혀 열납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루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사람은 정신이 가장 맑고 집중이 잘 되는 그 시간에 먼저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한다거나 신문을 읽는다거나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급하다고 생각되는 자기 일에 몰두해 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그는 할 말도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 시간적으로나 실제 비중에서나 하나님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일 어떤 조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그 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조건에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여유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정과, 기도가 가져다주는 안정은 다르겠지만 안정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조항을 포함시킵니다. 또한 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만 기도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여가와 휴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계기나 엄숙한 사건 같은 것이 주는 자극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조건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출발점에도 서지 못한 것이므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손길에 맡길 때 자신을 내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5~8절 말씀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우리들은 우리 마음이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할 수 있는 경건한 분위기와 계기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명령하시므로 우리는 언제까지고 계속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이야말로 우리의 기도 생활이 좌초된 순간에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기분이 아니라든지 다른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든지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댈 때마다 “기도하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시 27:8)는 명령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임무이며 의무입니다.

공산목양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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