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온선칼럼-문찬우 목사2015-04-10 16:02
작성자 Level 8

구원은 은밀한 빛처럼
로마서 11: 25 - 36

2007년도에 긴 꼬리를 지닌 핼리혜성처럼, 등장하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장을 일으켰던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이창동감독의 <;밀양, Secret Sunshine>;입니다. 이 극의 토대는 이청준의 원작소설 <;벌레이야기>;로, 유괴범에 의해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가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훌륭한 극본, 연출, 연기 등에 기인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배경이 현재의 한국 기독교회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인 신애(전도연 扮)는 비통하게 몸부림치다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한 교회의 집회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종의 구원과 영적 치유(divine healing)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간증하고 전도하는 열렬한 신자가 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리라 결심하기까지 이릅니다.

여기까지 보면, 거의 신앙간증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급반전합니다. 교도소에서 아들을 죽인 원수를 마주한 신애는 의식의 바닥에서부터 자신을 휘감아오는 만감을 이겨가며 힘겹게 용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용서를 받는 자가 더욱 거룩한 표정으로 답합니다. “내가 신애씨에게 하나님 얘기를 다 듣네요. 이곳에 와서 처음 그분을 알게 됐지요. 그래서 저도 제 죄를 고백하고, 매일 매일 기도하면서, 그분이 저를 다 용서해주시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돌무더기처럼 쌓아 올렸던 그녀의 믿음과 평화는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나도 아직 용서를 안 했는데, 누가 그 사람을 용서해! 하나님?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녀는 극단적인 안티크리스천으로 돌변하여, 교회의 집회를 훼방하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장로를 유혹하며, 하나님을 경멸하듯 이런저런 행동을 하다가, 광분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녀의 질곡을 말없이 지켜보던 종찬(송강호 扮)의 도움으로 신애는 어렵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은은한 봄 햇살이 인상적인 라스트신에서, 신애는 종찬이 든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스스로 머리를 깎습니다. 그 노골적 상징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에 대해 관객의 자격으로 해석해 봅니다. 먼저, 스스로 머리를 깎는 것은 ‘구원이란 스스로 거울 앞에 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애가 착각하였듯, 집단적 감동에 휩싸이는 것과 구원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인위적 매뉴얼을 들고 해결하려 들어도 안 됩니다. 구원의 도는 3분 요리 레시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거울을 들어주며 웃고 있는 종찬의 투박한 손이 상징하는 바는 ‘종교적 매너를 능가하는 인지상정의 힘’입니다. 교회가 종교인들이 구사하는 언행의 상투성을 싫어하는 비종교인들의 심리를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구원의 일은 더 효과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애를 비추던 인상적인 햇살, 즉 밀양은 ‘구원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윈드번(wind bur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람에 의한 데임입니다. 그처럼, 봄빛이 바람결을 타고 은밀히 돌아다니며 모든 존재에 미치는 영향이란 놀랍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신비(μυστηριον, musterion) 입니다. 구원뿐이 아니라, 용서를 하고, 용서받는 것도 모두 인간의 도식화된 공식 밖에 있는 신비로운 의외성, 돌발성을 지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자신의 예측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밀양>;이 크리스천 영화인지 안티크리스천 영화인지에 대해 뒷얘기들이 많지만,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창동이라는 인물만큼 예리하게 현대 개신교의 문제를 꿰뚫고 있는 관찰자는 흔치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화 <;밀양>;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일종의 ‘교양필수과목’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온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