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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더핑크의 구원신앙 박건 목사 (미가엘교회)2017-11-08 17:45
작성자 Leve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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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핑크의 구원신앙 (1)


이 책은 다음의 말로 시작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이 시작은 지금 시대의 복음이 물질 중심이 아니라 인격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교회는 ‘앉아 있는 의자가 몇 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개념이 형성된 신앙임을 아더핑크는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인들이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을 심각하게 다루는데, 죄를 가볍게 여기니 회개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고, 회개를 하지 않으니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 몸 안에서 욕망이 튀어나오고 이는 불법으로 이어진다. 죄는 우리의 욕망을 통제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날마다 고백되어지지 않는 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한 원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구원은 믿는 것 이상의 행위 즉, ‘회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볼 구원신앙이란 무엇인가?
구원에는 참 구원과 거짓 구원이 있다. 이 둘은 매우 흡사하여 사람들이 혼동할 수도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믿는 구원이 어쩌면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히 믿는 것 자체가 중생의 증거는 아니란 사실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 누가복음에는 이를 ‘길가’와 ‘바위’와 ‘가시덩굴’의 예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거짓 신앙의 특징은 무엇일까?
거짓 신앙과 참 신앙 모두 기쁨과 감격이 있다. 하지만, 거짓 신앙의 특징은 나를 위한 기쁨이 있고, 나 자신을 안심시킨다는 것이다. 믿음은 고린도후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 신앙은 자신의 행위(십일조, 헌금, 봉사, 선함)를 마치 구원을 위한 보험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안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어 생활하는 야누스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칭의만 원할 뿐 성화에 대해선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한다. 구원이 내 마음에 소원 될 리 만무하다. 구원이 중심에 없는 신앙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어찌 모실 수 있겠는가?
어떤 신앙이 구원 신앙일까?
진정한 구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령과 진정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자라 하여도, 주의 종이라 하여도 죄와 떠나 살 수 없다. 우리는 불순종에 대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고집과 반역과 불순종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며 따르는 선택이 있어야만 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이 구원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복음 14장에서 우린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데, 우리는 땅이나 소, 안락한 가정생활 등 구원보다는 실제적인 다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원이 우리가 언제라도 원한다면 우리의 의지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안심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높인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오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잠언서 28장 9절에서는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들의 기도는 대부분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져 있다. 저 하늘에 있지 않다. 우리의 신앙은 내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참 신앙은 위로부터 전달되는 영적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이해한다면 오직 은혜의 기적만이 구원 신앙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박건 목사


아더핑크의 구원신앙 (2)


성경 요한복음에서는 영으로 거듭난 구원의 신앙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 열매는 ‘순결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로 시작된 우리의 신앙이 ‘사랑’과 ‘믿음’을 낳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여 의지하게 되므로 ‘세상에 승리’를 얻게 되는 놀라운 변화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얻기 위하여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가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삶은 무엇인가?
인간의 실존을 살펴보자.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부패했으며, 부패한 인간은 자아의 욕망과 세상의 죄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에게 예수께선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결코 세상의 욕망을 버려두고 예수께 나가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은 쾌락이란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이 생각만큼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스스로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타락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이유는 육체나 정신의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영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 영역으로 부패하여 있는데, 그것은 ‘생각’과 ‘감정’과 ‘부패한 의지’이다. 이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지극히 이기적이란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삶은 이기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신앙도 이기적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기적인 인간이 그리스도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성경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경의 지식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이 구원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서 2장에서는 이를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성경을 말할 수 있는 지식은 있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 지혜는 바로 성령에서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listen to the Word by the Spirit(영으로 말씀)을 듣고, ‘pray by the Spirit(영으로 기도)’를 하고, ‘praise by the Spirit(영으로 찬양)’을 하고, ‘serve by the Spirit(영으로 봉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산 지식과 죽은 지식의 차이가 바로 성령이다. 성령께서는 ‘네거티브(negative)’한 방법으로 우리를 치시어 그리스도의 사랑에 복종케 하시고, ‘파시티브(positive)한 방법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뿐 아니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영적인 지식에 믿음이 보태지게 되고 사랑으로 연합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믿음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참 멋있는데, 그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냐? 말씀 따라 사는 것이 사랑이고, 말씀 따라 순종하는 것이 사랑이며, 말씀 따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므로 ‘Therefore, love is of a feeling or will’ 사랑은 감정과 의지가 아니다. ‘Love is the word’ 사랑은 말씀인 것이다.
성령의 말씀은 내 생각과 마음을 이끌어 준다. 인간의 감정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성령을 통한 사랑은 감각적이지 않다. 물론 일시적이지도 않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은 구원받은 자들의 열매이다.
구원신앙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할 뿐 아니라 그분의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게 한다. 성령 하나님께 붙들린 생각과 감정을 우리 스스로의 의지적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짊어진 채 그분을 따르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의 지식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수많은 잘못된 신앙의 지식이 넘쳐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교회가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는데 선봉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는 청교도 시대에 와서 진리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었으나 18세기 이후로 기독교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영적 부흥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교리들이 부각되었으나 각 세대를 거치면서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의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되었고 기독교는 병들어가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적 성품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하며, 우리의 자아를 영적으로 성찰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죄를 멀리해야 한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죄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내면의 갈등이 있음에도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하지 않기에 형식과 율법을 좋아하는 것이다. 인간의 죄는 테크니컬하다. 알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성령을 통하여 이길 수 있다. 로마서 6장 14절에서는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견고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연약하여 죄를 이길 수 없지만, 성령이 함께하여 주시면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게 되면, 완전하진 못하여도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라 말씀하고 있다.

[결론]
아더 핑크가 말하고자 하는 구원 신앙은 무엇인가? 난 이 책을 보면서 요한복음 13~15장의 강해설교를 듣는 기분이었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르지 않다는 견해는 우리 내 구원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신앙이다. 십자가의 신앙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한복음 12장 32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로 끌려가게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고통이지만,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면, 너희는 내게로 이끌려 올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나 자신의 잘못된 자아가 십자가를 통하여 사망되어지고 성령을 통한 구원의 신앙으로 새롭게 이끌림을 받게 되는 것이 참 구원임을 이 시간 고백해본다. / 박건 목사 (미가엘교회 / 인천지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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