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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교지에서 온 편지-네팔을 주님의 품으로!2013-08-24 08:23
작성자 Leve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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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잡신의 나라 네팔을 주님께로!

산타 세레스타 목사는 현재 네팔 카트만두의 스엠부 지역 바인시 파티에서 ‘본-장’교회를 9년째 담임하며 마을 운영위원회의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인물이다. 일찍이 카트만두 칼리지(Kathmando College) 건축공학과(construction engineering)를 졸업, 어느 외국인 회사에 샐러리 맨으로 근무 중 네팔의 코리언 NGO 단체인 ‘장미회’(간질병 퇴치를 위한 크리스찬 의사들의 모임)의 박종철 장로에게 발탁되어 한국으로 유학, 이후 다시 신학까지 마치고 목사가 된 이 나라 동북지방 ‘돌카’ 출신의 장래가 촉망받는 사람이다.
 작년에 완공된 교회 건물은 서울 아현 감리교회의 성금으로 지어진 것으로 산타가 5년 6개월 머물며 광운대학에서 수학(修學)하던 시절, 서울의 평창동 박 장로의 사택에 유숙하면서 주일마다 나가 예배드린 인연의 끈이 지속된 열매다. 필자가 그를 만나기 전 무엇보다 궁금하였던 것은 엔지니어 출신이며 또한 넉넉한 보수를 받던 외국인 회사에서 무슨 사연이 있어 목회자로 변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그의 입으로부터 들은 것이 없어 자못 유감스럽긴 하나 일단, 한국인이며 크리스챤인 장로님의 후원을 받게 된 그 ‘만남’의 시작이 바로 한 사람, 삶의 운명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나는 말처럼 들려준 그의 말로는 자신의 시골집 땅에 코리언의 투자로 건축한 ‘간질 퇴치 전문 병원’이 세워진 것은 재(在) 네팔 ‘장미회’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이었고 그가 참여하던 사회봉사활동과 관련, 자진하여 사유지를 기부하였다 한다. 박 장로가 그의 유학 5년간(광운대학 건축 공학과) 평창동 사택에서 숙식과 여타 경비를 제공하면서 뒤를 돌보아 주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는 이 같이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담겨있었다.
 1997년 졸업과 동시에 일단 네팔로 귀국하게 된 그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는데,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를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였고 신학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신학을 2년 만에 마치자 이어 2002년에 네팔 선교사 임명 파송을 받게 되었고  귀국 후 본-장 교회를 개척 중 네팔 현지에 안수 차 방문한 한국인 목사들로 부터 2004년 4월 임직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바인시 파티(버팔로(소)의 놀이터 란 의미) 신시가 조성지에 일단 건물을 세내어 시작한 개척교회, 그의 아내도 개척에 동참, 찬양대와 여선교회, 그리고 재봉기술 봉사팀을 조직하여 교회 일선에서 사역을 돕는 사이 몇 십명의 결신자가 생기게 되었고 차츰 교회가 활기를 띠던 중, 서울에서 다시 부름이 있어 가게 된 것은 그동안의 사역보고를 듣고 싶어 하는 소속 교단의 교회가 초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주일 강대상의 보고는 성도들의 지지와 약속을 받게 되었고 이 후의 모금액으로 부지를 구입하여 교회 신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마침내 1년여에 걸친 공사가 만료된 2013년 중반기에 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 돈과 물질을 앞 세워 시작한 선교가 아닌 한국 성도들의 세계 선교를 위한 비전과 그 의지가 구현화된 것이며 헌신된 한사람의 영혼구원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에 불타는  기도로 이루어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이며 가난한 네팔의 영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라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든 현지 성도들의 한 가지 마음이 만들어 낸 믿음의 열매로 보아 틀림이 없다.     
 그동안,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여 현제 장년과 학생부를 합쳐 약50여 명, 주일학교 어린이 100여 명 총150여 명의 재적인원이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당회에서 시골로 파송하여 개척중인 3곳, 그리고 50여 명 되는 16세 미만의 고아를 수용하며 양육하는 고아의 집에도 협력사역을 하고 있다는데 계속하여 모자원과 자립 기술교육을 가르치는 기관 설립을 위해  기도하는 중이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산타는 네팔의 지도자로서 지식, 재력, 믿음을 겸비한 촉망받는 영적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차후에도 그의 영적 변화를 주시해야겠지만 오늘의 산타가 되기까지의 숨은 노력과 그의 다듬어진 성품, 겸손한 메-너는 목회자가 지녀야 할 첫 쩨 덕목에서 마크되며 계속하여 스스로의 몸가짐에 소홀함이 없다면 그를 사용하는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변개함이 없을 것이라 믿어진다.
네팔은 한 마디로 우상과 잡신의 천국이다. 동리 곳 곳 마다 크리슈나와 시바의 신당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은 행열을 지어 아침마다 향불을 올리고 절을 한다. 기독교 개종이 드러나면 자녀를 가정에서 아예 쫓아내는 부모가 있는 나라, 잡귀들의 횡포가 노골적인 이곳에서의 기독교 전파란 핍박과 수모를 견디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급한 것은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며 믿음의 그릇들이다. 저들을 말씀으로 양육, 훈련하여 일생을 복음전파에 헌신하도록 도와주고 인도한다면 그로 인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며 기복신앙이 빚어내는 서로간의 갈등으로 영혼이 갈급한 오늘의 네팔에서 예수의 향기와 빛을 발하여 마침내 소망의 길을 열어가는 믿음의 나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누가 있어 상위계층의 위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저들 영혼을 구원하랴, 바로 산타와 같은 목사다. 그가 갖춘 현실적 여건이나 과거의 경력은 어느 고관대작 앞에서도 능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고 또한 저들의 인정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자질을 갖추고 있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가문의 후손으로 당대 존경받던 사회계층의 인물이었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황제 앞에서도 당당히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던가. 오늘 이 네팔의 상류계층을 복음화하지 못하면 가난과 질병, 사회악에 만연되어가는 서민들에게 힘을 싣고 저들 영혼을 구원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벅차다. 왜냐하면, 웃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며 웃 돌이 무거우면 아랫돌은 부서지기 마련이다.
 

주후 2013년 8월15일
네팔 카트만두 바인시 파티에서
김 상봉 선교사 

 좌우 양측은 산타 목사의 두 딸 그리고 좌측은 그의 아내, 가족 사진(2013년 8월15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