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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목양논단-안기호 목사(총회신학원 학감)2013-09-30 09:25
작성자 Level 8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원리

 

신앙의 입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에 의해 죄 사함을 받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는 구원의 완성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 성숙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영적 전투로 묘사하기도 한다. 신앙의 길에 들어선 성도에게는 마귀라는 대적이 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6:11).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위 구절들에 의하면 신앙생활에 들어선 성도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의 대상은 마귀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싸움은 성도 자신이 마귀보다 더 강한 힘과 지혜로운 전략과 첨단 무기를 갖춤으로써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도모하여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그 힘을 무력화시켜서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전투는 사실상 성도 자신이 그 마귀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써 자기 변화를 도모하여 승리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이 시험은 곧 영적인 전투였고, 예수님은 이 싸움에서 40일 간의 금식으로 인해 비록 육체적인 힘은 다 소진되었지만 기도로 자신을 지키셨기에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실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란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육적인 자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인 자아를 지킬 수 있는 신령한 힘을 공급받는 통로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전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15:31)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혈과 육의 속성을 벗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변화된다는 것은 바로 혈과 육의 속성을 벗고 신령한 속성을 갖추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령한 속성을 갖추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풍성한 생명력, 즉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삶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요, 우리의 생명력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따라서 영적 전투는 내가 변화됨으로써, 다시 말해서 혈과 육의 속성을 벗음으로써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나를 주장하시도록 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주장하시는 삶, 바로 그것이 승리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김을 주시므로 이길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앙생활에서의 영적 전투란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열심히 싸우면서 주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싸우시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이 싸우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영적 전투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어떤 힘을 얻어서 이기려고 하는데서 생긴다. 우리는 대적을 이기기 위해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힘을 다하고, 말씀 순종, 기도, 전도, 충성에 힘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하지를 않고 자기가 싸우려고 힘을 달라고 하니까 안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이기라는 말은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아니라 무슨 싸움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먹고 마시는 것, 그러니까 내 뜻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싸움을 싸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싸우라고 하신 싸움, 즉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기 위한 그 싸움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할 싸움을 하지 않고 자기가 만든 싸움을 하려고 하니까 마귀의 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성경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8)라고 말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하여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아무 것도 못 얻고, 신령한 것을 심으면 신령한 것과 육체의 것을 다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각각의 원리가 다 다른 것이다. 육체의 열매를 거두려면 육체의 것을 심어야 하고, 신령한 것을 거두려면 신령한 것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에는 썩는 것이고, 신령한 것은 썩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승리하고, 세상에서 자랑하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거든 세상의 방법대로 하면 된다. 기도할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기도해서 사업을 이룩했고, 기도했기 때문에 내 아이가 축복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기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땀 흘리고 성실하게 노력한 것으로 된 결과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필요한가? 그것은 성도가 하는 사업이 다만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쓰이는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세상적으로 꼭 성공해야 하고, 돈이 많아야 하고, 똑똑해야 하고, 권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바쳤느냐 하는 것이다.

 

기도했더니 성공했다이것은 사실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더니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었다이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기도는 내 자신을 비롯하여 사역, 사업, 가정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혹은 내 아이를 ...하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것도 바른 표현이 아니다. 신앙의 초기단계에서는 성경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소원과 열심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옳은 기도는 아니다. 물론 신앙생활 초기에는 정말로 그런 기도가 응답되는 것 같은 일이 왕왕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섭리자이시며 주권자이심을 새로 믿는 이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일 뿐이지 그것이 곧 성경의 원리는 아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다’ ‘예수 믿으면 병도 낫고, 돈도 잘 번다이것은 성경의 원리가 아니다. ‘예수 믿고 게으른 사람이 변화되어서 성실하게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야 성경의 원리에 맞는 것이다.

 

예수 믿었더니 지혜의 은사를 받고 똑똑해져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말도 옳은 표현이 아니다.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했더니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야 성경적으로 옳은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예수를 잘 믿으면 물질 축복을 받고, 물질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의식에 빠져 있다. 물론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을 그런 물질적인 복하고만 연결시켜서 어떤 사람이 못 살면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무엇인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만약 육체의 열매를 거두고 싶으면 열심히 육체를 위하여 심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거두게 된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얻는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보면 선을 행하는 사람들,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도 피곤하게 되고 낙심하게 된다고 말씀한다. 예수를 믿을 때 실제로 닥치는 어려움은 환경, 물질, 건강 등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낙심과 피곤이라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믿음 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라고 하는데 잘되지 않는다. 서로 격려하고 돌아보라고 하는데 역시 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좌절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라고 말씀하고 있다. 좌절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기도라는 씨를 뿌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힘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또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앞에 만족감보다는 오히려 낙심과 좌절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 싸움이다. 이것은 사실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리스도만을 더욱 의지하는 믿음을 갖기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뜻 앞에 자신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영적인 싸움은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기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심으로 이기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만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 안에만 거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자신을 깨뜨려서 주님의 뜻 앞에 자신을 굴복시켜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