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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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내가 먼저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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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10:40


내가 먼저 죽자(막 8:35-36)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막 8:36). 온갖 부귀영화를 다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첫 아담이 죽게 한 생명을 마지막 아담 되신 예수님이 살리려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가시관 쓰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죽으라고 하십니다(막 8:34).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말씀하십니다(막 8:35).
내가 먼저 죽으면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 삽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인류가 살았습니다. 우리가 다 살았습니다. 초대 교회 때, 사도들이 죽자, 초대 교회가 살았습니다. 바울이 죽자, 로마가 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이 너무 어렵습니다. 희망의 나라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많은 나라,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각자 자기만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살자’, ‘나부터 살자’를 외치기 때문입니다. 자기주장만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을 제일로 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온 나라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죽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온 나라와 국민을 다 살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첫째, 다 내려놓자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너무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우리가, 자기 자신만을 믿습니다.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너무 신뢰하며 삽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자기중심으로만 살아갑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간의 똑똑함과 자기 열심이 빚은 결과입니다. 지금의 어려움도 사람들이 자신만을 너무 믿은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이건 나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기억합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죄인이기에 완전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생각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읍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든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모든 짐을 다 내 앞에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이 아닙니다.
자기주장, 자기 고집, 자기 욕심, 자기 교만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면 서로 살게 됩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뜻이 사는 길, 그 길을 갑시다(갈 2:20).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온 국민이, 온 교회가, 모든 목사가, 모든 성도가, 대통령이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읍시다. 다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내가 먼저 양보하자

양보는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나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은 쉽게 양보할 수 있지만, 내 이익이 걸렸을 때는 양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평안하려면, 모두가 행복하려면, 모두가 승리하려면 양보해야만 합니다. 양보는 힘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힘 있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힘을 덜 써서 져 주는 것이 양보입니다. 뽐내기 위해서 힘을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우습게 봐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공동체, 사회공동체, 교회공동체, 나라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힘을 덜 쓰는 것이 진정한 양보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힘이 있습니다. 힘을 가지고 서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한편만 이기는 것만 아니라 모두가 이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내가 먼저 양보합시다.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왜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이삭은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창 26:22). 이삭이 우물을 파고 양보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지경을 넓혀 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다툼과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 양보했더니 그의 원수까지도 와서 축복했습니다(창 26:29).
우리도 서로 양보합시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지경을 넓혀 주신 것처럼 대한민국의 지경도 넓혀 주실 것입니다.

셋째,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자

내 입장, 내 주장만 생각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역사는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은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고 에덴동산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생각하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에 우리를 생각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평화를 생각하면 평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늘의 일을 생각하면 하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골 3:2).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함은 경청입니다. 수많은 오해와 다툼은 대화의 불통에 있습니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의 생각을 경청할 때, 이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생각을 경청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님의 생각을 경청할 때, 서로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상대가 실족하든 말든 생각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지면 귀를 닫아버립니다.
상대를 먼저 생각함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기독교인 된 우리부터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합시다. 경청함으로 소통합시다.


넷째, 죽으면 다 산다

우리는 죽으면 다 산다는 원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에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안타깝게도, 알긴 아는데 그 죽음이 자기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양보하기만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다 자기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스스로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죽고 있는지’,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죽고 있는지’,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먼저 죽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신앙은 먼저 죽는 신앙입니다. 양보함으로 낮아지는 신앙입니다.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서 손해 보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기를 자청할 때, 모두가 살맛나는 세상이 됩니다.
죽으면 삽니다. 낮아지면 높아집니다. 손해 보면 더 풍성하게 채워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우리 모두 내가 먼저 죽음으로 모두를 살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