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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총회신학원 신학토론회-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단편적으로, 혹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거나 공부하기 때문에 전후문맥이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2014-10-07 09:20
작성자 Level 8
●●사회자 : 신학교리국장 조상협 목사입니다. 이번 2014 전국신학생 연합 개강수련회 공개주제토론은 패널토의로 진행하게 됩니다. 전체주제는 “신학과 인문학의 만남”입니다. 진행방식은 사회자가 질문하고 패널이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에는 방청석에서 질문자 2명을 받아서 패널들의 답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오늘 패널로 참석하신 교수님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왼쪽부터 전북신학교 김희수 교수님, 총회신학교 이경진 교수님, 전북신학교 최강욱 교수님, 총회신학교 오세준 교수님, 총회신학교 조선남 교수님, 총회신학교 임형순 교수님, 광주신학교 최남성 교수님 이십니다.
●●사회자 : 첫 번째 주제입니다. 신학은 오늘날 사회현상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가? 입니다. 먼저 임형순 교수님께 질문해 봅니다. 교수님! 신학이 사회현상에 대해서 적절한 답변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임형순 : 신학이 사회현상에 대해서 답변을 한다는 의미는 사회현상에 대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학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전한 신학적 기초가 우선되어야 하고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일본에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를 반일 감정으로 잘됐다. 천벌을 받았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바른 신학적 이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세를 심판하시지만 이는 단순히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폭우와 산사태는 일본 원전 방사능 오염물질을 중화시키고 씻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요소라고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거기에도 인명이 희생되고 이재민이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인류애적인 감정과 선교의 기회를 열어주신 것이라고 폭넓은 이해를 하는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회자 : 그렇군요. 관련해서 김희수 교수님께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회와 신학적 입장은 어떻게 정리를 해볼 수 있을까요?
●●김희수 : 먼저 교회와 신학적 입장에서 배제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교회와 신학적 입장은 이러한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교회는 이러한 사건에 철저하게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교회의 강단이나 신학교의 교단에서 목사와 교수가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교회를 분파시키는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적, 신학적 입장의 언급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일이 될 것입니다. 신앙적이고 신학적 입장이라 함은 교회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입장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힘써 돕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마저 입술로 끝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힘써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최강욱 교수님께 질문하겠습니다. 목회자의 사회적 신뢰도의 문제가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는데 종합적인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강욱 :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교회 목사님들은 마을의 유지였습니다. 학교 운동회나 졸업식에 목사님들이 가서 상장을 주고 본부석에 자리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위치를 상실하였습니다. 원인을 분석해 보자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자식이 교회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설마 교회에서 나쁜 것을 가르치겠느냐는 사회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교회가 빛처럼 소금처럼 사명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뉴스는 교회의 부패한 모습들이 너무나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목회자의 자질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목회자라고 하면 그래도 시골에서는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 진학율이 거의 100%에 가까운 현실이고 석박사 출신의 사회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목회자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적 리더십이 학력으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적 시스템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지금도 우리가 전국신학생 수련회를 하고 있지만 한 번 보세요. 평균연령이 4,50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편하게만 공부하려고 합니다. 대충 공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공부하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게 됩니다.
●●사회자 :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최강욱 교수님께서 목회자의 자질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두 번째 주제는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성 설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조선남 교수님께 여쭙겠습니다. 신학과 인문학의 차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조선남 : 학문을 하는 데에는 그 주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신학과 인문학의 차이는 그 주제의 차이입니다. 신학은 그 학문의 주제가 하나님이고, 인문학은 그 학문의 주제가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학과 인문학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지만 인문학에서 사람의 생각을 다루는 학문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예술성을 다루는 학문을 미학이라고 말하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신학은 성경, 즉 하나님이 규정하는 사람의 마땅한 생각을 기독교 철학이라고 하고, 사람의 예술성이 하나님을 향할 때 기독교 미술, 기독교 음악, 기독교 건축 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연구하고 보존하며 회복을 연구하는 학문을 기독교 생태학, 또는 창조과학이라고 말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신학과 인문학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 관계성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것인지 오세준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오세준 : 역사적으로 보면 예전에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모든 학문을 신학을 위해 존재하는 학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인문학적 학문의 결과들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실한 신학교육은 이러한 관계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적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신학은 단순히 개론에서 배운대로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성서신학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이는 가장 기초적인 조직신학적 입장마저도 우리 스스로가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속성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결과물마저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포함시켜야 신학의 범위가 제대로 설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세상의 지식이라고 폄하하고 배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배운 학문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는 말씀은 인문학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 빠져서 자신의 지식이 전부인줄 알았던 자신을 버리고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바울이 말하는 배설물 같은 학문의 성격은 기독교적 세계관 즉 신학이 배제된 인문학은 의미없는 배설물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설정은 흔히 말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그럴때에 신학은 더 많은 유용한 결과물을 내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 그렇군요. 요즘 한국인의 독서량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볼 때 목회자의 독서량에 대해서 이경진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경진 : 독서는 우리가 인문학이나 신학에 대해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거기서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입니다. 고궁을 보더라도 아무런 지식이 없으면 ‘와 멋있다. 대단하다’ 정도의 감탄이 나오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러나 관련지식을 가지고 보면 달라집니다. 기와 한 장, 배수시설, 관련사상과 과학적 상식을 이해하고 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정교함이나 과학성, 철학적 심오함과 심미적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넘어가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목회자의 설교의 수준은 독서량에 비례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나도 앞으로 더욱 많이 읽겠습니다. 
●●사회자 : 흔히 인문학의 총체를 말할 때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철학의 부재로 나타는 한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형순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형순 : 철학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늘날 맘몬이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철학이 빠져버리면 황금제일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옛 철학자들의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 즉 사람이 먹고 사는 일에만 집착하면 결국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철학이 없으면 이윤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염된 폐수를 가책도 없이 하수구로 흘러 보냅니다.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질 치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군림하고 지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또 정치하는 사람이 철학이 없으면 입신양명에 집작하게 되고 추악한 권력욕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사회자 :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목회자의 목회적 전문성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최남성 교수님 목회자의 목회적 전문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최남성 :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두 가지만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목회자는 성경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동의함을 의미하는데 성경을 알아야 동의를 할 수 있죠. 또 성경을 모르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이미 완전한 계시로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는데 성경은 읽지 않고 엉뚱하게 응답만 바라고 있으니 기도응답이 없는 것이고, 기도원이나 예언자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모르면 삶의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영성에 대해 잘 모르거나 경험이 없어서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성이라는 말은 단순히 성령충만함을 말하고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말한 것처럼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의 영성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는 사랑의 영성으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도를 감동시켜야 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 : 짧은 시간 불구하고 핵심을 잡고 성실하게 답변해 주신 모든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방청객 중에서 두 분만 선정하여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광주신학교 학생 : 최강욱 교수님께 묻겠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을 다시 한 번 평가해 주시고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강욱 : 한국교회의 상황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를 꼭 집어서 말하지 못해도 다들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몸살이 났는데 어디가 아픈지를 말하지 못하지만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방법은 몸살 감기약을 먹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지금을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지금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적절한 대처를 해야만 합니다. 말하기 귀찮다고 말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다면 더 큰 병을 키우는 것이 됩니다. 지금이라도 하나 하나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전북신학교 학생 : 신학교리국장님께 묻겠습니다. 목회자의 전문성에서 특히 성경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씀하신 부분 공감합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조상협 : 우선 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단편적으로, 혹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거나 공부하기 때문에 전후문맥이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성경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성경의 주제에 대한 접근, 곧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성경각권이 갖는 위치나 의미를 파악하고 세부적인 내용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짧아서 다 답변하지 못하지만 예를 들어서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레위기입니다. 창세기는 우리와 언약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고 있고, 민수기는 하나님과 언약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으며, 출애굽기는 그 언약의 과정을, 신명기는 그 언약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교육시키는 계약서이자 교육교재입니다. 흔히 말하는 역사서와 선지서는 그 언약을 잘 지켰는지와 그 언약을 지키고 지키지 않았을 때의 상황과 결과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핵심이 되는 레위기를 제사법으로 치부해 버리고 공부하지 않습니다. 즉, 가장 중요한 알맹이를 놓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사회자 : 공개주제토론 “신학과 인문학의 만남” 이번 년도에는 그 필요성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내년도에는 충분한 시간을 배정해서 그 발전과 적용에 대한 부분을 다룰 것을 약속드립니다. 시간에 함께해 주신 모든 교수님들과 신학생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잔잔한 자극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