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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목양논단-안기호 목사 D. Min2014-05-09 09:02
작성자 Level 8

아담의 리더십에서 찾아본 현대 사회의 병폐

아담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물로서 인류의 조상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에덴동산의 관리를 위임받은 청지기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에덴동산의 관리를 맡기시면서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1:27-29).

여기에서 ‘다스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1492;&;#1491;&;#1512;)는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통치하다”라는 뜻으로써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고 자연계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른 피조물들에 대하여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리더로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청지기로 세워진 아담에게 청지기 정신에 입각한 영적 리더십의 기본원리와 책임을 일깨워주심과 아울러 그 리더십의 생명인 계율을 정해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경작하며’가 ‘다스리며’로 번역되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아베다흐’(&;#1491;&;#1492;&;#56193;&;#56616;&;#64303;&;#1500;)는 “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뜻을 가진 ‘아바드’(&;#1491;&;#56193;&;#56616;&;#64303;)의 단순부정사로써 이 용어는 자연과 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 정신의 기본적인 원리가 무엇인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면과 봉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리더십은 근면(성실함)과 봉사(섬김의 자세)를 바탕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지키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솨메라흐’(&;#1492;&;#1512;&;#1502;&;#64298;&;#1500;)는 “울타리를 치다, 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조금의 손상도 없이 보존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당신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살피도록 위탁하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아담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 세상을 잘 관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낼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계율은 자연계의 질서 유지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리더인 아담이 스스로 피조세계(자연계)라는 공동체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겸손히 지켜나갈 때, 그 공동체의 성원들인 다른 피조물들 역시 각자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나가게 될 것이며, 결국 자연계의 질서가 평온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세계의 청지기로서 아담에게 요구되는 것은 “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 ② 공동체적 인식 ③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청지기의 자세와 책임을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계율을 깨뜨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먹은 것이다. 불순종은 즉시로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그 자신의 존재와 행동의 근거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계의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이는 하나님 안의 질서에서 하나님 바깥의 질서로 이탈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 안의 질서를 ‘영적’이라 하고, 하나님 바깥의 질서를 ‘세속적’이라 할 때, 아담의 리더십은 세속적 리더십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리더십은 세속적 리더십의 전형(典型)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율을 배려가 아닌 제약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피조세계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리더로 만족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 이른바 자존(自存)에의 망상이다. 피조물이 자존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은 어리석은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위치에서 다스리겠다는 잘못된 야망의 산물이며, “더 큰”을 넘어선 ‘절대적’ 권리와 권력을 희구하는 권력지향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담은 결국 스스로 제약이라고 생각했던 계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리를 확대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다. 하지만 불순종의 결과는 아담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스스로도 초라하고 추하게 느껴지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은 것이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계율이 제약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자연계의 질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실로 그것은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이요, 은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3:11)고 물으실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습니다”(창3:12)하며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림으로써 그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는 비열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행동에 비추어볼 때, 세속적 리더십으로서의 아담의 리더십 유형은 권리추구형(Rights without responsibility pursuit type) 혹은 권력지향형(power-oriented) 리더십으로 분류할 수 있다. 권리추구형 리더십은 공동체의 안전이나 복지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를 이용하여 공동체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확대하고 누리는 데만 집착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고 권리만을 추구하는 리더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물론 권리를 추구하는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권리는 책임과 의무에 뒤따르는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간디는 <;망국론>;이란 글을 통해 ① 원칙이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② 노동이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③ 양심이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④ 인격이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⑤ 도덕이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 ⑥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⑦ 희생이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을 망국의 길로 가는 7대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간디의 손자가 ⑧ 책임이 없는 권리(Rights without Responsibility)를 추가했다고 한다.
 
책임을 우선하지 않는 권리추구형 리더는 보다 더 큰 힘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는(moving forward power) 권력지향적 성향을 띠게 되며, 결국 권력을 모든 가치의 최우선순위에 두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와 권력을 확장&;#12539;집중&;#12539;지속시키려 하고, 죽는 그날까지 그것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으며, 예외적이고 특권적인 존재(Privileged Being)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그러한 힘을 개인의 명예, 지위, 출세, 보상의 수단, 힘과 지배의 원천, 개인적 이익보전을 위한 수단 등의 이용가치로 생각하고 항상 남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권리와 권력에는 높은 윤리성과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리더는 윤리성과 책임의식에 있어서 공동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리더에게 윤리성과 책임의식이 없으면 결국 탈선하게 되고 스스로도 권위를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을 파괴하게 된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티스피어(Ethisphere)가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World’s Most Ethical, WME) 기업을 선정, 발표했다. 에티스피어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5대륙 21개 국에 38개의 글로벌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에티스피어는 올해 41개 산업을 대표하는 144개의 기업의 수상자를 발표했으며, 이중 21개 기업은 처음으로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평가항목은 기업의 윤리(ethics), 윤리 제도(program compliance), 평판(Reputation), 리더십(Readership), 혁신(Innovation),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 책임(Responsibility), 윤리문화(ethical culture) 등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기업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동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드멘테는 한국의 기업윤리에 관해 “한국인의 도덕관념은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왜냐하면 개인적 감정이나 관계가 아닌 보편적 규칙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경영 사상의 기초를 무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비뚤어진 성공지상주의와 성장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와 어떻게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하고 만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책임감, 사명감, 헌신, 봉사, 희생 등의 가치는 거의 립서비스로 외치는 단어들로 전락되었고, 실제로는 현실에 밝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이상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현재 한국은 10대 재벌의 매출액과 자산규모가 모두 국가 전체 총생산(GDP)을 넘는 완전 재벌위주의 국가다. 기업소득률, 기업저축률, 사내유보금 비율도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에 빈부격차, 노동시간, 비정규직, 노조조직률, 노동분배율, 학력별 임금격차, 남녀 임금격차, 자영업 비중과 폐업 주기, 대학등록금 등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 수준이다. 자살률, 저 출산율,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비율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인 능력이나 사정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도 바로 우리 사회의 이런 구조적인 병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어떨까? 어쩌면 비뚤어진 성공지상주의와 성장만능주의는 한국 사회 보다 한국 교회 안에 더 심각하게 만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길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조금만이라도 솔직해지면 쉽게 알 수 있고 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교회의 리더들 가운데는 아담의 리더십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들로 인해 잘못된 세속적 사상이 이 사회와 교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솔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담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영적인 리더는 공동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워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임적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리더가 자신의 그 책임은 뒤로 하고 오히려 공동체위에 군림하거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고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행복을 파괴한다면, 그러한 리더는 존재할 가치도 이유도 없다. 영적인 리더는 책임적 존재로서 헌신하는 리더, 봉사하는 리더, 공동체에 희망을 주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