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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약자와 동행하는 인권변호사 엄상익2010-04-08 10:26
작성자 Level 8

"제가 섬길 153명을 찾고 있습니다." 

'대도 조세형' '탈옥수 신창원' '조폭 여운환' '다단계의 큰손 주수도' '여대성 청부살인사건' 등은 모두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사건들이다.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
그는 수십 억의 사례비를 들고 찾아오는 의뢰인일지라도 불의한 변론이라면 단호히 거절하는 '인권변호사'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큰 돈이 걸린 사건이라도 양심이 허락치 않으면 차갑게 거절하는 옹골찬 소신. 반면 '사람 냄새 나는' 사건이면 무료 변론을 하면서라도 뜨겁게 매달린다.
그는 실제로 타살로 판명된 청송교도소 내의 의문사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두고 많은 이들은 그를 '인권변호사'라고 하기도 하고, 요즘같은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줒대가 뚜렷한 변호사'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판단한다면 '수박 겉핡기'를 한 것이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에게서 하나님 이야기와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빼고 나면 남는게 없을 것 같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가 가지고 다니는 작은 가방 안에는 너덜너덜한 일본어 신약성경과 성경을 듣기 위한 오디오, 그리고 수첩이 들어 있다.
성경읽기는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인 듯, 기자에게 성경을 몇 번 정도 읽었느냐고 묻는다. 그는 신약성서만 60회 이상 읽었다고 했다.
"제 꿈은 비록 평신도이긴 하지만 영혼 속에 말씀의 성전을 쌓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말씀의 성전'을 쌓고자 그렇게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는 모양이었다. 
한편 소망교회를 오랫동안 출석했던 그는 지금은 집 근처의 교회로 옮기려는 중이라고 했다.
"제가 고통 가운데 거한다면 그 고통도 감사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게 제 꿈이에요."
그에게서 2009년에 다녀온 성지순례는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갈릴리호수에서 사흘간 머물며 베드로가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을 순간을 떠올린 것이 그에게 삶에 변화를 일으켰다.
 '아.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비즈니스적으로만 만날 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153마리의 물고리를 잡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수첩을 꺼내 보인다. 수첩 안에는 물고기 도장이 찍힌 월력이 눈에 들어왔다.
"평생 섬기고 봉사하며 신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의뢰인 153명을 만나고 싶어요."
물고기 모양의 도장은 자신이 섬기고 싶은 153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153명을 섬기는데 상황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동행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평생 153명의 의뢰인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빠삐용이 자유로운 육지로 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드린다.
"빠삐용 같은 사건을 제게 주십시요. 제가 빠삐용 같은 사람을 돕도록 인도해주세요."
기자는 엄 변호사가 돈 없는 사람들의 의뢰만 맡다보면 가난하진 않을까 싶어 재정상황을 물었다.
"먹고 사는 건 하나님께 다 맡겼어요. 그렇다고 제가 늘 아가페적인 것은 아니에요. 지식노동자로서 정당한 댓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댓가를 당연히 받지요." 
물론 돈 없고, 배경 없고 억울한 사람들에겐 예외다.
변호사인 그가 법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그 내면에는 선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소외된 이웃도 있다. 하지만 돕고자 했어도 더욱 악해지는 사람, 더욱 분노하고 배신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그는 뼈져리게 경험했다.
"하늘을 보고 하는 일이지, 사람을 보고 하는 일은 아니지요."
법정을 다니면서 거기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지를 찾았다는 엄 변호사.
그는 목숨을 거고 당당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실을 밝히고 숨겨진 음모를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각오가 있어야 했다.
그는 이단들도 많이 싸워봤다. 협박과 공격 속에서 겁을 먹기도 했지만 이단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고 결론은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의 일터인 법정은 그에게느 치열한 글쓰기의 무대다. 그가 만났던 숱한 판사와 검사,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이나 강도 등 그는 변호사로서 발견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글쓰는 일을 통해 좀 더 밝게 정화시켜 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변호사이지만 소설가, 작가, 칼럼리스트로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는 엄상익 변호사.
그는 바쁜 변호사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에세이와 소설을 발표해온 문필가다.
"변호사 생활 30년 동안 폭력적인 사람, 음란한 사람. 세상을 원망하며 범죄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새벽이면 그들을 통해 제 마음 속에 찾아든 감동들을 글로 썼지요. 직업상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으니 감동을 글로 쓰는게 습관이 됐지요."
그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만도 13권. 고난 속에서  아침이슬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쓰고 싶었다.
최근 그는 두 권의 칼럼집을 냈다. '엄상익 변호사의 세상엿보기'라는 타이틀로 낸 '시인과 이십만원'과 '천국보다 좋은 나쁜 이 세상'(글마당)이다.
이 두 권의 책에는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첫 칼럼인 '시인과 이십만원'에는 63편의 칼럼이 담겨있다. 1부 '내 평생 가는 길', 2부 '소매치기와 재판장'과 3부 '세상의 그 사람들'은 법원 안팎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의 모습을 법창야화가 아닌 인간의 깊숙한 내면세계를 마치 사랑이란 따뜻한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클로즈업한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담담히 풀어냈다.   

김진영 차장(nspriit@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