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매님의 편지를 읽고 내가 좋아하던 <;아리사>;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자매님의 마음 어디에 그처럼 아름다운 영혼의 무늬가 아롱지고 있었는지 가슴이 시려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요, 인간의 마음에는 진주보다 귀한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외모만 보고 어쩌고 저쩌고 평가한답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아름답습니다. 비록 질투라 할지라도, 분노라 할지라도, 그것이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참회의 눈물은 얼마나 더 아름답습니까! 그 눈물 속에 이웃과 모든 이의 아픔도 함께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것을 봅니다. 자매님이 아프니까 내가 아픈 것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같이 아프고 같이 우는 것이지요. 이 편지를 쓰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일도, 염치없는 일도 아닙니다. 여자로서의 행복, 남자로서의 행복, 12살은 12살의 행복, 40살은 40살의 행복…을 갖고 싶어 하지요. 행복을 바라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며 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매님이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하듯이 행복은 가장 많이 사랑에서 온다고 동감합니다. 사랑이라면 눈물부터 나는 게 인간이 아닐까요?
옛날 희랍의 <;디오게네스>;라는 철인은 하수구 통 속에 살면서 햇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와서 부귀영화를 준다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나는 바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려오고 행복해집니다. 소나무도 나를 행복하게 하고, 바다도 갈매기도, 길섶에 돋아 있는 순하게 나부끼는 이름 모를 풀잎 하나도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조각은 또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바람, 계절, 새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얼마나 기쁘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까! 이 세상에 빛이 충만하듯이 기쁨과 행복은 또 얼마나 곳곳에 충만합니까!
사랑하는 J 자매!
사람들에게서 사랑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물은 흘러가다가 막히면 굽이치고 그 수로를 바꿉니다. 사랑의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행사가 그러합니다. 인간들에게 사랑은 언제나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결이고, 때로 그 수로를 바꾸는 미로입니다. 사랑의 길을 온전히 살고 있는 분은 주님뿐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랑덩어리이며 사랑은 그분에게서 나와서 인간들에게서 병들어 신음합니다. 그러나 바위, 소나무, 하늘, 바다,… 그런 것들은 그래도 깨끗합니다. 흘러가는 사랑에 둥둥 떠내려가면 위험합니다. 스스로 깨질 염려가 있습니다. 사랑은 피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할 때의 고통은 뼈가 무너지는 것 같은 것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J 자매! 사랑은 받기보다는 주는 것임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주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도 한 팔 끼어서 덩달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에게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냥 흘러가는 것일 뿐이지요. 어쩌면 탐욕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을 더욱 사랑하셨는데, 피 흘리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진수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J 자매!
자매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매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행복은 하늘 높은 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내 발 밑의 풀이파리에도 있습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매님을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자매님의 아픈 영혼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 묻은 손이 우리의 아픈 영혼을 붙잡아 주십니다. 이제 곧 자매님은 유리알 같이 영롱한 행복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작품 노트)
J자매는 지체부자유와 저지능의 소녀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이모 집에 얹혀살며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는데, 겨울 삭정가지처럼 메마른 그 심령에도 사랑이 싹터서 우리교회 남자 전도사님을 은밀히 짝사랑하며 고민하다가 혼자 감당키 어려웠던지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많이 울며 이 답장을 썼습니다. 지금 그녀는 미국의 지체부자유 청년과 결혼
하여 미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카드를 보
내오는데 얼마나 잘 사는지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는 언제나
할 말을 잃고 감탄만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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