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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 상실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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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8 16:59

당신은 정서적 학대, 언어적 학대로 인해 어린시절을 상실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날 한 소년이 큰 기대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간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기대였다. 그러나 어젯밤에 걸어놓은 자신의 양말 속에는 돌맹이밖에 없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그 아이가 너무나 말썽꾸러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벌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 벌은 아이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다. 그 아이는 평생을 그 기억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이것이 정서적 학대의 한 예이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어떤 것이 그의 감정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비록 그가 가족 중의 어느 누구에게도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들은 그가 화를 낼 때마다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 분노는 소모적인 것이다. 잘못된 대답은 분노를 초래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정확한 대답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은 정서적인 습격에 계속해서 대비하고 있다. 이렇게 화를 자주 내는 부모와 오래 살면서 아이들의 정서적인 상처는 점점 깊어진다. 이것이 정서적이고 언어적인 학대의 또 다른 한 예이다.  
당신은 종교적 학대로 인해 어린시절을 상실할 수 있다. 종교적 학대는 부모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사용하여 아이를 죄책감과 두려움의 상태에 묶어둘 때 일어난다. 아이들을 종교적으로 통제한다면 다음과 같은 정신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나는 만족스럽지 못해. 만약 더 잘해내지 못하면 하나님은 나에게 벌을 주실 거야.”   학대받은 아이들은 갑옷을 입는다. 그들은 매사에 방어적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갑옷이  입혀졌을 때 어린 시절의 순수한 신뢰감은 상실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감정을 억압함으로 어린시절을 상실할 수 있다.
치료 모임 중에 한 여 집사님이 가정 내에서 살인을 목격한 것을 기억해 냈다. 비록 어른이었지만 그 기억이 너무나 무겁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억압하였다. 그녀의 기억은 차단됐고 자신의 감정과 분리됐다.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 어느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은 꼭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것을 목격하지 않고도 정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거나 자신의 감정을 차단할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떠나버리겠다는 어머니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는 것은 분명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매일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나 또는 가정이 곧 붕괴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서적인 상처를 만들어낸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나중에 그것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다. 아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났나요? 그것은 무슨 의미였나요? 지금은 모든 일이 괜찮은 건가요?"
그러나 심각한 역기능가정일 경우, 아이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없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무도 그 일에 대해 다시 말해 주지 않는다. 아이는 정서적으로 만성적인 충격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때까지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
당신은 가혹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남기로 선택함으로 어린시절을 상실할 수 있다. 어느 날 당신은 다음과 같이 깨닫는다.
“어린아이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어. 나는 살아남기를 원해. 그러므로 나는 빨리 성장할 거야.”
당신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당신의 불행한 모습을 보고 “어쩌면 너는 그렇게도 착하냐?”고  칭찬할지도 모른다.

참고: 팀 슬레지[가족치유?마음치유] 존 브래드쇼[내면아이의 치유] 데이비드 시멘즈[기억을 통한 정신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