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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하나님과 마음속에 느끼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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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4:59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우리가 배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성적인 개념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정서적 혹은 마음속의 개념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 마음속의 개념은 부모나 다른 권위 있는 중요한 타인의 인격을 반영하고 있을 수 있다.

「기억을 통한 정식치료」의 저자인 데이비드 A. 시멘즈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우리의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한 신앙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에 대해 느끼는 것(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으로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머릿속에 든 신학은 뛰어난 지식이지만 내면에서 느끼는 것(기도할 때 느끼는 것)은 아주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많은 신앙인들에게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근원이 되고, 기억을 통한 치유가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어 준다.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아무리 교리적으로 유식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느낄 수 없고 마음속에 영상으로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들의 생활 속에 영적인 승리가 지속되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멘즈는 여러 번 환자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그려보도록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환자들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실수와 잘못을 잡아내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커다란 눈동자를 그렸다.

다른 환자들은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이 달린 새를 그렸다. 어떤 신학생은 장부를 들고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스크루지의 그림을 가져왔다.

그 학생은 스크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저입니다.” 그 신학생은 자기 반에서 언제나 A학점을 받는 우등생이었다.
당신이 지닌 하나님은 어떤 모습인가?

역기능가정에서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습은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부모의 모습과 흔동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의 부모가 완전주의자였고 결코 기쁘게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당신은 하나님도 결코 기쁘게 해드릴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부모가 가혹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은 하나님도 가혹한 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당신을 심판하기 위해 하루 종일 앉아서 당신의 실수를 일일이 적고 있는 율법적인 하나님인가?

그분은 당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가 당신이 무슨 잘못을 하는 순간 뛰어나와 “잡았다. 나는 네가 그럴 줄 이미 알고 있었지.” 라고 말하는 형사와 같은 하나님인가? 어쩌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습은 “앉아 있는 황소”와 같을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의 하나님은 번제를 기다리며 구름위에 요가 형태로 앉아 있는 하나님이다. 아니면 당신의 하나님은 무관심하고 냉정하며 멀리 떨어져 있고 은하계를 운영하느라 바쁜 철학자의 하나님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무실 문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지금 바쁘니 방해하지 말 것” 또 잘못된 다른 하나님의 모습은 언제나 “벽돌을 만들라”고 말하는 바로와 같은 하나님이다. 당신은 벽돌을 만든다.

그러면 그는 말한다.

 “벽돌을 더 만들라” 당신은 벽돌을 더 만든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짚단 없이 벽돌을 만들라” 당신은 이 일이 언제나 끝나게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참고: 팀 슬레지[가족치유?마음치유] 존 브래드쇼[내면아이의 치유] 데이비드 시멘즈[기억을 통한 정신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