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하나 있습니다. 누가 노랫말을 지었고, 어떤 가수가 불렀는지는 모릅니다만 흘러들은 그 노래 가사가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가사를 소개하면 “네가 잘라 일색이더냐? 내가 못나 바보였더냐?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이지, 잘나면 잘났고, 못나면 못났지 사는 게 행복인 거야” 대충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나름대로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란 말은 진리입니다. 이 본문에서 전도자 솔로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생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와 그 삶 속에서 각자 누리는 삶의 분복이 곧 삶의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해 아래서 모든 인생이 마음에 악, 즉 욕심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살다가 결국은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 나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의인이나 악인이나 그 이름이 다 잊어버린바 되고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도 다 사라지는 것이니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같이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그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모른 채 탐욕이 가득하여 미친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삶의 분복을 깨닫지 못하고 내게 없으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들만 바라보고 시기하고, 욕심내고 낙심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누릴 줄 모르기에 불행한 것입니다. 시편 40: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소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의 보배로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게도 없는 것을 구하느라고 소중한 삶의 시간을 다 낭비해 버리고 맙니다. 지금 내게 있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은혜와 복은 도외시 한 채로 없는 것만을 생각하고 불평하고, 그런 것들을 찾고 구하는 것은 탐욕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5에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수기 작가인 요네코 여사가 「산다는 것은 황홀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35년 전, 요네코 여사는 일본의 중산층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큰 불편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낙심에 빠졌습니다. 갖기를 원하나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다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달려오는 전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항상 없는 것만을 아쉬워하는 삶에는 만족이나 삶의 의미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그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두 다리와 왼쪽 팔은 아예 떨어져 나가 버렸고, 그나마 하나 남은 오른쪽 손마저도 손가락 두개가 잘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멀쩡한 사지를 갖고서도 없는 것만 추구하다가 자살에 이를 정도였으니, 그처럼 모든 것을 잃은 뒤에는 더욱 좌절하고 절망하여 삶을 포기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네코 여사는 지금 전혀 새로운 인생을 행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세 개의 손가락밖에 붙어 있지 않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도 손가락이 세 개나 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지금 있는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사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요네코 여사는 남아있는 소중한 그 세 개의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산다는 것은 황홀하다” 여러분! 어떻게 두 다리가 없고 한 팔이 없으며, 손가락이 일곱 개나 없는 여자의 삶이 황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내게 있는 것의 보배로움과 가치를 알았을 때 그의 삶이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창조해 가시면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 다 만드셨고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사 있게 하신 것들을 사용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미디안 광야의 80세 노인 모세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지만, 그가 들고 있던 마른 막대 지팡이를 사용하며 애굽의 속박을 벗어나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를 지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마주한 다윗은 방패도, 칼도 갖지 못했지만, 지금 손안에 있는 물멧돌을 들고 나갔을 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운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까?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것 지금 여러분이 처한 이 모습 이대로 감사하고 그 은혜와 소중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머리를 만져 보십시오.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남아 있어 손에 잡힙니까? 남아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제 모습이 보입니까? 볼 수 있는 시력이 남아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제 말이 들립니까?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코로 숨쉬고, 입으로 먹고, 마시고, 말 할 수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두 팔이 있고, 두 손이 있고, 움직일 수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가슴에 손을 대보십시오. 심장이 움직입니까? 살아있으니 얼마나 행복입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기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우리의 예배 터로 주셨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배 마치고 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먹고 소화할 수 있는 건강이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돌아갈 집이 있고 누울 잠자리가 있고 집에 가면 방마다 거실, 부엌, 냉장고 구석구석 곳곳마다 필요한 삶의 물건들이 쌓여있고, 옷도 있고, 신발도 있고, 먹을 것, 마실 것 있으니 얼마나 부자이며 행복합니까? 자고나면 일할 사업장, 직장이 있고, 공부할 학교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부르면 대답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하늘도 맑고 깨끗하고, 가을바람도 상쾌하고, 산과 골짝, 논, 밭, 거리의 가로수 모두가 아름다운 이 계절에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음이 이 얼마나 황홀한 행복입니까? 행복하게 사십시다. 길어야 3주를 넘기지 못하는 매미들도 생을 노래하는데 거기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긴 수명입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삶을 기뻐하며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