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생의 이중성
가난하고 불쌍한 여인7명을 이유 없이 살해한 『 살인기계』강호순은 독신자 클럽에서
『 깔끔한 신사』였다.
이웃주민들에게는 『두 아들을 둔 친절하고 인상 좋은 젊은이』였다.
그가 그런 끔찍한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정말 그 사람이 맞느냐고 확인한 후엔 놀라움에 치를 떨었다.
영국작가 스티븐슨의 소설『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낮에는 선량하고 도덕적이며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밤이 되면 인간의 짓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살인자로 돌변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이중성과 선과 악의 양면성을 표현하고 있다.
바울사도께서도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탄식한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또 다른 법이 일어나서 나를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가는 것을 보는도다 슬프도다! 누가 이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리오! 』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미 타락했던 인생들은 중생(重生)하고 거듭났어도 아직 몸(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죄의 소원이 끊임없이 거듭 살아나는 것이다.
모기를 잡아도 잡아도 시궁창웅덩이에서 끊임없이 모기가 생산되는 것같이 인간의 내면에는 쉬지 않고 죄의 소욕이 일어나 두 인격이 충돌하는 것을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2>탐심은 혼의 생각이며 우상숭배.
돈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절대적 우선순위를 두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소유욕은 우상숭배인 것이다.
구멍가게 유리 창 안에 사탕이 담긴 유리 상자를 드려다 보는 거지아이에게 지나가던 신사가 한 봉지를 사 주었다.
눈이 왕방울처럼 놀라 사탕 한 알을 우물거리는 아이에게 『아이야 나 하나만 주렴!』
『안 돼! 내 꺼야! 』하며 봉지를 움켜쥔다.
최희준씨의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곳에 정 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노래가 그리스도인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래 제 것도 아니면서 『내꺼! 』라고 움켜쥐는 그리스도인은 없는지.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사탕봉지는 어떻게 내게 주어졌는지 탐심을 내려놓고 겸손히 생각해 보자.
더 많이 가지려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자.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우상숭배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는 둘째사망에 참예 』한다고 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사탕봉지를 집착하고, 하나님 앞에 탐심의 우상숭배를 내려놓지 못하였다면, 누구라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재물은 몸에 내가 머물고 있는 동안에 소용되는 것이지 육(肉)의 옷을 벗고 난 후에는 전혀 쓸데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옷을 벗기 전, 아직 기회가 내게 있을 때, 영혼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곳과 친구를 사귀는 곳에 허비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지혜로운 물질관은 전혀 없음을 명심하자.
3>참 그리스도인
누구든지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 후부터 『나』를 내려놓고 예수가 내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거듭날 때 』본래의 나 자신은 죽었고 그 분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우리는『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임을 한시라도 노치면 안 된다. 긴장하고 또 긴장하고, 확인하고 재확인하며, 자신에게 적용하며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항상 시시때때로, 분마다 초마다, 그 분의 인도하심과 감동해 주심을 따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선택하지 않으면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정로에서 벋어나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분리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성령의 감동에 따라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분의 의지와 감동을 무시하고 거역하면 그는 그 때부터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훈과 삶의 내용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 속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속지 않으시고 『네가 심은 대로 썩을 것을 거두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가끔 우리시대에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 하는 분이 어디 계신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분이 없음이 이 시대의 비극이며 나를 슬프게 한다.
혹시 내 시력이 나빠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4>그리스도인과 시대적 영향
교회는 시련과 박해 속에서 그 생명력을 확장하고 복음의 영향력이 증폭되어 왔다.
유럽의 역사 저변에는 그리스도 복음의 영향력이 맥맥이 흐르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복음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인간다운 삶의 모습과 인권이 보장되고 생명의 가치, 특히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울 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착한 행실을 세상 사란에게 비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권 안에 정착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 난 후부터 급속히 타락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권력화 되고 물질과 명예와 세속에 맛을 들인 후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세상의 지탄과 질시의 대상이 될 때 하나님은 근심하게 되시고 드디어 불법과 거짓과 탐욕의 노예로 전락할 때 이단의 잡초가 번성하는 토양이 되고 교회는 그 가치를 상실하고 표류하게 되며 하나님의 슬픔이 진노로 바뀌어 징계의 채찍을 드시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50년 후, 아니 10년 후의 미래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면 이제 우리 모두가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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