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사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7∼9) 대체로 사람들은 '잘 산다'라고 하면 재물이 많은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잘 산다'는 의미가 달라져서 쾌적한 환경과 크고 넓은 주택, 고급 승용차, 여가생활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것 외에도 단란한 가정생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생활도 '잘 산다'는 조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입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말은 철저히 성경의 가르침에 의한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왜곡된 개념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잘 사는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첫째는, 구원 얻은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멸망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생각하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고 결코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 사는 것은 그보다 영적상태에 관련됩니다. 영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이 그 위기를 알지 못하고 다만 육신적인 안락만을 추구하고 이를 즐기고 있다면 이는 비극입니다. 인생에게 제일 급선무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어서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은 사는 것도 유익하고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만 섬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습니다. 사병을 318명이나 양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재물로 인해 그가 '잘 사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예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기에 힘썼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정녕 '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는, 주님의 일에 힘쓰며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행한 일들은 갖가지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일에 대하여 사람이 가지게 되는 의미와 가치의식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시는 가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그런 일들만이 참되고 영원한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좋지 않게 여기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이 있습니다.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것, 하나님께 헌금과 헌물을 드리는 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활동을 주님의 일을 위한 목적으로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이 될 것이며, 그 모든 일이 영원한 의미와 참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몇 푼 안 되는 종이가 그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인하여 수백억 원의 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손바닥만한 약속어음 종이에 세계적인 갑부가 금액을 기재하고 서명하면 수천억 원의 가치를 가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세월은 마치 우리 앞에 놓여있는 백지와 같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세월의 백지 위에 무엇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 얻은 자가 되어 예배를 즐거워하며, 봉사하고, 주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것은 주어지는 세월에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잘 산다'는 개념을 철저히 성경대로 인식하고 그대로 실천하므로 진실로 '잘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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