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시론-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이억주 목사2011-04-14 09:53
작성자 Level 8

한국교회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최근 수개월째 이른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금권선거 논란으로 인하여 교계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일어났고, 세상으로부터 조소와 조롱을 받고 있다. 일부 과장된 것도 있으나,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입이 열이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이러다가 그냥 주저앉지나 않을지 염려하여, 기도하며 잠을 못 이루는 이들이 많다. 한국교회의 현재의 모습이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고린도후서 6:7,8)라는 성경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현재 문제를 지적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있으며,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도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모두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했으며, 또한 하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이 분들의 진흙탕 싸움의 결과가 한국교회를 위한 것이 되는가? 이다. 어찌 신앙의 동역자들이 원수가 되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린도전서6:3,6,7)

한기총의 문제는 범죄적 행위의 묵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사회 법정에 제소한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름을 따져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어느 쪽이건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전체가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누가 전적으로 옳고, 누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상주보다 더 슬픈 듯한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들보다 더 열을 올리는 자칭 의로운 사람들이 가세하고 있다. 이들도 한국교회를 위한다는 확신에 차있다. 잘못된 정보를 맹신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이들에 의하여 한기총이 권력기관이거나 이익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기총의 재정과 운영 상태를 안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한기총이 한국교회의 대표기관이 아니라는 주장도 정당하지 못하다.
한기총은 1989년에 창립되어 현재는 69개교단과 19개 기관의 연합체이다. 한기총이 그동안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관 실현을 위한 일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 등의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 왔다. 그 모든 선한 결과는 없는 것으로 하고, 단지 한기총을 주저앉히기 위한 공격으로 일관한다면, 기독교 안티세력들에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하는 것이고, 그 파장은 더욱 크게 증폭될 것이다.

‘세계역사상 한국교회만큼 부패한 적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과장 발언이었다고 양보해도, 그 말은 교회에 대한 왜곡이자, 절대다수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에 대한 모독으로 매우 잘못된 발언이다.

교회를 감히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남들의 수고에 편승하고 무임승차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일부의 잘못이 전체의 연좌제처럼 여겨져서도 안 된다. 지금은 훈장(訓長)선생님의 호통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낳아 기른 생모(生母)의 눈물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언론의 하이에나식의 보도는, 소인국에서 포로 된 걸리버와 같은 형상이다. 최근 언론은 기독교와 관련하여 수많은 비난과 비판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교계 일부인사들이 교회를 비난해 달라고 일반 언론에 주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패륜적 행위이다.

교회지도자들이여 이래가지고 어찌 주님을 뵈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 예수님의 보혈로 세우신 교회의 중요성에 대하여 칼빈(J. Calvin)의 말을 빌려오면,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교부 키프리안(Cyprianus)은 교회를 어머니처럼 받들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없다고 했다. 로마 권력에 굴복한 목회자들을 향하여 도나투스파(Donatist)는 교회가 부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에, 어거스틴(Augustinus)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는다. 부패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라고 응수했다.

교회는 복음과 생명의 말씀, 진실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복음의 진리 전파와 수호를 교회에 맡기셨다. 문제는 진리를 전파하는 이들로 인하여 진리의 가치성이 손상을 입을까 염려된다.

한국교회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은 성도의 거룩(Holiness), 존귀하신 하나님의 명예를 지켜가는 성도의 명예심(Honor), 하나님의 품성을 닮은 성도의 진실(Honesty)을 회복해야 한다. 패트릭 콜린슨(Patlick Collinson)의 말처럼 ‘교회는 바티칸에서 보다 카타콤에서 더 강했다’는 교회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지도자들이 먼저 주님을 위하여 죽자.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하셨다. 터툴리안(Tertullianus)의 언명처럼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다.

한국교회는 일제에 의한 민족 해체의 위험한 시대에 도래해서 절망과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 그 자랑스러운 전통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총과 함께 교회가 어려울 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한기총의 이처럼 부끄러운 일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도 실은 한기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교회에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에 한국교회는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하여 더 이상 밟힐 수 없을 만큼 비참해졌다. 이 일에 관련된 인사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호소는 이제 우리 모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던 주님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마태복음23:37-39)

이제 한국교회 가슴을 찢는 회개와 함께 회개의 열매를 맺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낮은 자리에서 새롭게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