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성령으로 
한얼산기도원 이천석 목사는 부흥강사로 성령으로 뜨겁게, 말씀으로 새롭게, 은사로 강하게! 기도하며 부흥 사역을 감당해왔다. 함경남도 고원에서 1929년 6월 20일 출생한 부흥강사 이천석 목사는 6.25 전쟁에 참여하여 한쪽 다리를 잃고 상의 용사가 되었다. 그 후 자신을 비 관하기도 하고 명동밤거리의 세계를 살았다. 별명이 명동 백곰이었다. 어느 날 한강 백사장에서 부 흥강사 성결교단 이성봉 목사의 집회를 방해하려고 참 석했다. 그런데 오히려 감동이 되어 은혜를 받고 그냥 돌 아오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아내 변춘자 사모의 간절한 부탁으로 기 도원에 올라갔다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1959 년 10월 24일 삼각산기도원에서 아내를 위해 기도하며 갑자기 천정을 올려다보는데 느닷없이 천정이 뚫리더니 새빨간 불덩어리가 그의 머리위에 떨어졌다. 드디어 성 령의 불을 받은 것이다. 그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 었다. 온몸이 타버릴 것 같았고 머리가 아찔했다. 그런 후에 빛 가운데 거하는 온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 다. 그런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였고 그 당 시 전도사시절에 1967년 5월 31일 서울 중구 광희동에 서 50평 3층에서 임대로 개척교회를 시작했고 성복중앙 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개척 후 초창기에 신유은사가 크게 일어났다. 기도할 때 귀신이 내쫓겨 나가고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다. 병원에서 사망선고 받은 사람도 이천 석 목사가 손을 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기적 이 일어났다. 이천석 목사는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222에 한얼산기도원을 세우고 한국교회에 기독교의 큰 역사를 이루는 모델이 되었다. 70년대 이르러는 신유와 방언으 로 한국교회의 은사집회로 유명해 졌다. 한국교회의 많 은 신자들이 한얼산을 찾고 능력의 부흥집회를 대대적 으로 실시했다. 이글을 쓰는 이수 교수도 3-40년 전 목회 초창기 때 큰 아들이 간난 애기였을 때다. 한얼산기도원에 기도하 러 가서 지금 목사가 된 큰 아들을 멍석에 재우고 남편 목사와 한밤중에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도하던 그때의 그 믿음이 새롭다. 특별히 한국축구 대표선수였던 차범 근 선수가 무릎 부상을 당했을 때 이천석 목사에게 안수 를 받고 고침을 받았다. 그 후 독일에 가서 프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무사히 마치고 오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차범근 선수에게 처 음에 전도했을 때는 시큰둥했는데 부상으로 드러눕게 되자 제대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소식을 듣고 한얼산에 올라가 이천석 목사에게 기도를 받고 하 나님의 역사로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믿게 되었고 신유 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다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지금까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천 석 목사는 종암동 성북중앙교회를 건축하고 1985년도에 위임목사가 되고 한얼산기도원의 원장으로 삼천리 방방 곡곡 어디든지 다니며 세계에까지 복음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1986년에 집회현장에서 설교 후 과로로 쓰러지게 되 었고 1989년 8월 17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게 되었다. 지금도 한얼산기도원은 이천석 목사 의 믿음의 유지를 이어 한국 땅에 거룩한 부흥운동이 이 어져 가고 있다. 많은 신교사와 목회자들의 기도의 부르 짖음이 이어져 가고 있다. 지난주에 강사로 한얼산기도원에서 말씀을 선포한 가족세트전도 박영수 목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사랑의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오늘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지금부터 천국갈 때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 에 들어가게 도와주세요” 가족세트전도 총괄본부장 이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