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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함과 고백적 자기나눔... '치유'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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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10:33
정서적 상처는 단시간에 치유되지 않는다. 지원그룹을 통해서 중독자와 동반의존자 참석자들은 어떤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가? 지원그룹은 어떻게 해서 참가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집단상담 참여자들은 어떻게 자기 패배적인 행동과 태도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행동과 태도로 대체시키도록 도와 줄 수 있는가?
「가족의 충격」의 저자 게리 콜린스(Gary Collins)는 여러 가족 상담자들의 의견을 다음의 3가지 단계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로, 악순환의 고리를 깨려면 성인 아이가 옛 고통을 재 경험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서적 표현'(emotional expression)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둘째, 그동안 부인하거나 억압하고 은닉하였던 분노와 수치심, 슬픔, 죄책감, 상처 등의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얽매인 희생자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크리스천 심리학자 데이비드 베너(David Benner)는 "우리가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려면 먼저 신뢰와 수용의 분위기에서 고통스런 감정을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애초에 받았던 상처로 인해 야기된 옛날의 고통을 재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첫 단계에서 치유적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경험은 '카타르시스'(catharsis)와 '고백적인 자기 나눔'(confessional sharing)이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되었던 감정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보통 눈물로 나타나는 카타르시스는 정서적 치유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애통은 ‘상처에 대한 수리적 반응’(reparative response to hurt)이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과 상실을 슬퍼하는 애통 과정은 치유를 가져온다.
이 단계에서 정서적 고통에 대한 또 하나의 수리적 반응은 상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말하고 자기 개방(고백)을 하는 것은 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나는 상처가 아픈 경험과 관련된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가장 잘 치료될 수 있다고 믿는다…인간은 관계를 위해서 창조되었는바 우리는 이 관계들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상처의 치유를 충분히 경험한다." ,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시인할 때만큼 강해질 수는 없다."
상처의 경험이 치유 받기 위해서는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상처는 대인 관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치유의 도구'(instrument of healing)는 '고통의 도구'(instrument of affliction)와 맞먹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에 의해서 상처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치유는 인격적 관계 속에서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상처는 나를 용납하고 경청하며 내 상처와 분노의 표현을 수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누어질 때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의 명령은 "우리가 짐을 서로 나누어지라는 것이다"(갈 6:2). 짐을 나눌 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고 우리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기 위한 준비 과정이 될 수 있을지라도, 경험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 다른 인간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대치시켜서는 안 된다." 
고백에는 하나님께 하는 비밀스런 고백과 특정한 죄를 범한 대상에게 하는 개인적 고백, 회중이나 집단 앞에서 하는 공개적 고백, 그리고 '중요한 타인들'(significant others) 앞에서 하는 치료적 고백이 있다. 특히 소그룹의 중요한 타인들 앞에서 하는 고백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