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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와 갑절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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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8 17:01

사명자와 갑절의 노력
(왕하 2:9)
문정렬 목사


사명자가 가는 길은 그렇게 평탄하기만 한 길은 아닙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좁은 길이요 순교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70문도를 전도자로 내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수차례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처럼 사명자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어떠한 도전이 다가와도 절대 신앙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열왕기에 보면 선지자 생도들이 있었습니다(왕하 2:3). 이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 당시에도 사명감을 갖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이들의 지도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이에 선지자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에게 너는 길갈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던 엘리사는 죽음으로 맹세하고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인 밷엘로 함께 내려갔습니다. 벧엘에서 같은 동역자들의 비방과 부정적인 말로 엘리사는 선지자 생도들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지 않고 여리고에 갔습니다. 엘리사는 생도들의 비난과 부정적인 시기, 질투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흔들림 없이 요단까지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사는 엘리야가 기적으로 갈라지게 한 요단강 물을 지나 여호와의 산으로 함께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도전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과학 기계 문명의 도전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선이 달과 화성에까지 도달하고 인공위성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하나님 보다 과학 기계를 더 사랑하고 신뢰하게 됐습니다. 과학 문명이 신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둘째로, 기독교를 도전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도전입니다.
물질만능시대에 사람들은 물질 때문에 친구를, 가족을 등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물질의 신이 등장한 것입니다.
셋째로, 대중오락, 향락주의, TV, 영화, 스포츠 신의 도전입니다.
학생들은 오빠부대, 박수부대, 자살부대, 음란비디오 등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성세대들의 무분별한 행동들이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불바다가 되고 로마가 도덕과 윤리, 종교가 부패하므로 망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넷째로, 무신론의 도전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면서 만일 신이 살았다고 해도 늙어서 힘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유럽교회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건물만 있을 뿐 신자가 없는 무덤 같은 교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유럽에서 교회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섯째,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도전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동정녀 탄생, 십자가 부활, 심판과 재림도 믿지 않으면서 시한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설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현혹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며 능력을 받지 않고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면 이길 수도 없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사명자가 갑절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들림 받기 전에 엘리사에게 “너에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당신 영감의 갑절이나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에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 궁전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40년간 에굽의 학문과 예법에 통달했습니다.
이에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민족을 구하고자 인간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살인자가 되어 바로의 눈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40년간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40년 만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과 신발을 벗으라는 사명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민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출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우리가 학문만 가지고서는 인간의 지식과 힘만으로도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학문과 인간의 지식은 인간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강하고 담대하게 됩니다. 또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의 역사로 귀신이 떠나가며 구원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명자가 갑절의 노력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을 주목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구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왕하 2:10)
우리는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면 언젠가는 좌절과 실망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어떤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능력과 좋은 것, 영적인 권능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간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정복했을 뿐입니다. 애굽을 바라보고 생각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8,19) 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대망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생각하고 성령의 도움과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멀리 보는 역사적인 눈, 사물을 바로 보는 과학적인 눈, 존재를 깊이 보는 철학적인 눈,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는 예술적인 눈,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갑절의 능력을 받아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 미래에는 우주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