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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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필 목사, 심은 대로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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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13:14

순복음노원교회 유재필 목사
심은 대로 거두리라
본문 : 갈라디아서 6:6-10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트 까뮈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까뮈는 노벨 문학상을 각각 10만 달러와 함께 받았습니다.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까뮈는 파리 근교에 아름다운 별장과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돈으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지었습니다. 까뮈는 자신이 구입한 승용차로 별장을 가다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슈바이처가 지은 병원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고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슈바이처는 오늘날 ‘20세기의 태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인생 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을 성경의 다른 번역본으로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에게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나쁜 것을 심어 놓고 어떻게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심은 것은 생각지 않고 나쁜 결과에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옛날 어느 나라 임금님이 나라 안에 현명하고 유능한 학자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백성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12권 분량의 책을 만들어 왕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분량이 너무 방대해 백성들이 언제 읽고 배우겠냐며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은 장시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쳐 6권으로 다시 만들었고, 임금님은 이도 많다하여 결국 한 권으로 줄였으나 아무 내용도 없다며 그 또한 반려되었습니다. 한 권을 한 페이지로 줄였으나 임금님의 반응은 같았습니다. 그렇게 길어서 어떻게 온 백성이 외울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임금님께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로 작심하고 딱 한 줄만 적어 올렸습니다. 그제야 임금님은 흡족해 하며 “바로 이거야! 이것만 지킨다면 백성 모두 잘 살 수 있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깨달아 지켜야할 것은 다름 아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요 우주의 법칙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첫째. 심고 거두는 법칙은 물질세계에 철저히 적용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우주의 법칙입니다. 고추씨를 심어놓고 고추밭으로 호박을 따러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투자를 해야 이익을 내는 것입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좋지 않은 것을 심어놓고 좋은 것을 거두려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변개치 않습니다.
주인이 맡긴 것을 땅에 묻어두고 이익을 남기지 못한 종에게 돌아온 것은 책망과 상실뿐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그렇다면 내 돈을 은행에라도 맡겼다가 본전과 이자를 가져와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있는 것도 남김없이 빼앗깁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즉시로 나가 장사를 하여 갑절로 남겼습니다. 성실과 최선의 결과는 만족입니다. 근면과 열정의 몫은 상급입니다.
예전에는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올려 사용했습니다. 지하 20-30m에 파이프를 박아 펌프질을 하여 물을 얻으려면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합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백배, 천배의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먼저 심지 않으면 무한한 자원을 꺼내어 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공짜는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자연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남의 탓, 세상 탓만 합니다. 가난에 처해도, 풍랑을 만나도 나의 본분을 잃지 않고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하며 자족하며 사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환경과 재물이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내가 상대방의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성 원리와 같습니다. 한 마디로 ‘받고 싶은 만큼 주라’입니다.
1992년 미국 LA 한인 타운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동이 일어난 자리와 폭도들이 진출한 방향이 북쪽에 있는 한인 타운 쪽이라 한국인들의 가게와 건물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일 흑인이 유독 한국인에 대해서만 감정이 나빴다면 폭동지역 안의 한인상가는 모두 불에 타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한인 상가가 흑인들의 보호 아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흑인들이 밤새도록 보초를 서며 지켜주었습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호의적인 가게를 흑인들과 주민들이 지켜주어 약탈과 방화를 면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흑인 중 돈이 없어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는 사람의 장례식을 위해 돈을 준 사람의 가게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아이들을 마치 친자식처럼 생각하며 우리 민족의 따스한 정을 나눈 사람들의 상점 역시 그대로 보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심고 거두는 법칙이 가장 예민한 문제입니다. 헝클어진 인간관계 또한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에 급급한 욕심의 결과물입니다. 자기사랑, 자기귀염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세대학교의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백낙준 박사는 평안북도 정주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박연순 집사님입니다. 박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큰 은혜와 복을 받은 분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주의 전을 떠나지 않고 늘 기도하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미국의 알 매킨이라는 선교사가 그 지역에 교회를 짓다가 그만 돈이 없어 더 이상 교회 건축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박 집사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논을 팔아 모두 교회 건축에 내놓았습니다. 논을 팔았으니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어 그 교회의 사찰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교회에서 생활을 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선교사는 이 충성된 집사님의 아들을 중국에 데려다가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곧바로 미국으로 데려가서 프린스턴에서 신학을 공부시키고 예일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초대 문교부 장관이요 연세대학교의 초대 총장인 백낙준 박사입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께서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울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일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이요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절대 예배, 절대 순종뿐입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며 다른 말로 복음전도와 구제입니다.
만 가지가 하나님의 선물인데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반드시 예물을 가지고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많이 있어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재물이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드릴 것이 없어 목말라야 합니다. 받지 못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드리지 못해 아파야 합니다. 나의 가장 귀한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름답고 복된 것, 선한 것을 하나님께 심으시기 바랍니다. 심어야만 거둘 수 있습니다. 날마다 좋은 것을 심어 좋은 것을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