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끝나고 사무실에서 일 좀 하다가 대개는 아침 8시쯤에 집에 간다. 그때쯤이 애들이 학교 갈 차비를 차려 놓고 아침 식빵을 먹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애들이 먹을 때 나도 같이 먹어야 일손이 번거롭지 않을 테니까.
집에 당도하여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면 둘째 은강이 녀석은 장난 끼가 있어서 주방 뒷벽에 몸을 숨겼다가 내가 지나갈 때쯤 갑자기 튀어나오며 웍! 하고 소리쳐 놀래키는 것이다. 물론 무방비 상태에 있던 나는 자지러지게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녀석은 그것이 재미있어 뱃살을 쥐고 웃어젖히고 깡충깡충 뛰고 끝이 없을 것처럼 법석을 떤다. 제 어미의 큰 소리가 나와야 겨우 진정이 되어 아직도 웃음을 끅끅 삼키며 빵을 먹는다. 녀석은 그것에 재미를 부쳐서 가끔 그 짓을 한다.
나는 처음 몇 번은 속았지만, 영리한 내가 제깐 녀석한테 매양 속을소냐 어림없는 소리렸다! 그래서 어느 날은 단단히 맘을 먹고 시치미를 떼고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방 뒷벽을 재빨리 훔쳐보았다. 너무 조용한 것이 낌새가 이상했다. 벌써 알조였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일부러 발소리를 내어 지나가는 척하다가 내 쪽에서 먼저 불시에 손을 내밀며, 웍! 하고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벽 뒤에 도사리고 있다가 오히려 제 쪽에서 깜짝 놀라며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멋진 일격에 여지없이 당해 버린 녀석은 그러나 실망의 탄성을 내지르며 억울해 죽겠다는 짓놀림이었다.
내가 알아차린 후에는 녀석은 나를 놀래 주는 그 짓을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그냥 시무룩히 풀이 죽어있는 것이다. 나는 녀석의 짓궂은 재미를 꺾어 버린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개그 기질을 타고난 녀석의 장난 끼가 어디 가랴. 며칠 있다가 또 그 장난을 시작한 것이다. 나도 이젠 잊어가는 때였으므로 깡그리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나한테 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하여 꼬놓고 있었던 게 틀림없는 사실이렷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녀석은 통쾌하다는 듯이 뱃살을 움켜쥐고 떼굴떼굴 굴러가며 하루종일 계속될 것처럼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녀석의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녀석에게 죄를 범한 듯한 풀죽은 내 기쁨이 다시금 용솟음치는 것이 아닌가. 박카스를 먹은 것보다 더 활력이 넘쳐났다. 나는 신나 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속으로 혼자 다짐했다. 그래, 저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언제까지나 놀라주마! 네가 철이 들어 그 짓을 쑥스럽게 생각할 때까지는….
그렇게 다짐하고는 녀석과 함께 두잽이를 하며 이불 위 방바닥 할 것 없이 마구 뒹굴어 젖혔다.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목소리도 한결 더 싱싱해졌다. 그리고 다가와서는 내 뺨에 쪽 뽀뽀하고는 개선장군처럼 아파트 복도를 휘젓고 나가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애의 싱싱한 발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알 수 없는 감사가 뻐근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달짝지근한 눈물로 고여온다.「하나님, 감사합니다!」나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늦가을 아침 햇살이 거실 안으로 아른아른 해 그림자를 던진다. 나는 출렁이는 가을 햇살에 내 마음을 싣는다. 내 마음에는 갑자기 홍수처럼 감사가 불어나고 기쁨이 넘쳐난다.
생각해보면 삶의 현장 하나 하나가 감사고 기쁨이다. 그동안 잃었던 이 귀한 것들을 녀석이 나에게 찾아다 준 것이다. 나는 기막히게 달짝지근한 이 감사를 안고 교회로 향했다. 그러는 내 등뒤에서 아내가 소리쳤다.
『추수감사절 준비 다 됐어요?』
돌아다보며 빙긋 웃는 내 미소의 뜻을 아내는 아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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