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위치를 비쳐 보자!
BC 25년 갈라디아 왕 아뮨다스의 사후 로마 영으로 되고, AD 41년 글라우디오 때 “더베”라 불리 운, 소아시아의 중부 루가오니아의 성읍을, 바울은 제 1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했고, 제 2차 전도여행 때도 다시 방문했다. 이때 바울을 따라 아시아까지 동행한 “가이오”가 이 곳 출신자이이기에 성경은 “더베 사람 가이오”라 기록 되었다. 그런데 그 “더베”에서도 순교자들이 나왔다. 그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받은 고문에 의한 순교의 이야기를 다 기록하기란 실로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들은 갈고리가 아니라, 조개껍질로 살을 뜯기었으며, 목숨이 끊어 질 때 까지 몸 이곳저곳에 그러한 가혹한 일은 계속 되었다. 심지어 여자들은 옷을 벗기 움을 당하고, 전라의 상태로 장대에 묶여 높이 들린바 되어 많은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야만적이고, 참혹하며, 비인도적인 일을 , 사람들은 큰 구경꺼리로 알며 좋아 했다. 어떤 이는 나뭇가지에 결박되어 살해되기도 했는데, 일부러 만든 도구로 가장 강한 나뭇가지들을 함께 잡아당긴 후, 그 하나하나에 순교자들의 수족을 결박하고 급히 가지를 놓아 버림으로써, 그 반동으로 수족이 찢어져 죽게 하는 잔혹함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일들은 수일간 혹은 잠시 동안 계속 된 것이 아니라 몇 해 동안이나 계속 되었으며, 한 번에 10명 이상, 때로는 20명이상, 또 어떤 때는 30명, 60명, 100명이나 되는 신자가 각양의 고문과 형벌을 받고 아내와 자식과 함께 피살 되었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자신이 직접 이러한 사실의 목격자임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때 살해 된 자의 수가 너무 많아, 처형 무기는 둔해지고 이빨은 없어지다 시피 되었으며, 사형 집행인 자신들도 살육에 지쳐 이것을 싫어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기독교 순교사 에서)
함에도 불고하고 그 수많은 이들이 순교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용한대 대하여, 오늘날 우리들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서는 거침없이 형제를 증오하고, 무슨 흠집이라도 없나하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분명한 것이라 해도 누가 그러하더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바르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물고, 뜯고, 찢기는 작금의 교계 지도자들의 모습 속에서, 자성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까? 모든 흠결은 타자에게만 있는 것으로 몰아 새우다 보니, 사회 법정에 의뢰하여 서라도 “저들을 죽이시오‘하겠다고 성명전을 벌이는 것인가? 물론 주장 등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해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동질성이 있다면 서로를 권면하되 살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 사람은 죽어 마땅한 사람, 영원히 교계에서 퇴출해야 할 사람, 아니 대한민국 땅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 통증을 느낀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는 자들과는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고의나 악의가 없는 것이라면 권면으로도 화해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제라도 먼저 간 순교자들의 죽음 앞에 우리의 위치를 비쳐보고 부끄럽지 않은 신앙으로 회복되어지기를 기대해 보자. 아니 그저 형제들을 살해하고자 하는 일만이라도 회개할 수 있는 복을 누렸으면 한다.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 21-24)
한국장로회신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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