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논단/안기호 목사2011-01-10 09:43
작성자 Level 8

은혜와 책임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신 역사를 총괄하여 일컫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구원, 사랑, 선물, 친절, 긍휼, 신실, 인내, 보호, 인도, 축복, 부르심, 돌보심 등의 의미를 다 포함한 포괄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은혜’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인 ‘헤세드’(chesedh)나 신약성경의 ‘카리스’(charis)와 ‘엘레오스’(eleos) 등도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한 마디로 아담의 죄와 타락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계시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주권적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데,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완전하고도 명백하게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은 독생자의 성육신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죄인들은 사죄의 은총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승리를 얻게 되었으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적 수난, 대속적 죽음, 승리의 부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게 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기 때문에 이 은혜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인 우리들의 죄를 대신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시다.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4-17)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은혜이심을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 은혜와 일반 은혜로 구분하고 있다.

1. 특별 은혜

특별 은혜는 한 마디로 구원의 은혜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값없이 의롭다 하시고(롬3:22-24) 그들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다스리시고(롬5:21) 그들을 성결케 하며 구원의 주를 통하여 영광에까지 이끄는(히2:10) 은혜를 뜻한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보면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물이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시므로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선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온 특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전적인 은혜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곧 인간 행위의 무용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구원에는 인간의 행위가 필요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그 주권적인 은혜가 중생함을 받은 자의 개인의 책임까지 던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 책임이 새로워지고 확립되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구원이란 궁극적으로는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죄인들을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 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삶은 인간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구원의 은혜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활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인간에게는 그 이전과 비교할 때 전혀 새로워진 선한 삶, 즉 진실하고 성결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 

그러므로 참으로 은혜의 주권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소유와 재능들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대로 진실하고 성결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그의 영광을 선포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며 그가 받은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예컨대 타락→구속→감사→책임의 생활이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의 올바른 생활 원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거룩한 백성, 이른바 불가견적 교회(Ecclesia in visibilis)를 확립하는 것이다.


2. 일반 은혜

성경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①모든 사람의 구주시요 ②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다. 

따라서 세상과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역은 구속 받은 자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 역시 구원하는 은혜의 특수성과 일반 은혜의 보편성이라는 두 가지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 은혜와 구분하여 포괄적 개념을 지닌 일반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같은 원리로 예수 그리스도는 불가견적 교회인 그의 신비적 몸의 머리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하늘과 땅의 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그의 교회를 세워 나가실 뿐 아니라 또한 일반 은혜를 통하여 전 인류를 유지하신다.

사실 이 일반 은혜라는 양식은 개혁 교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일반 은혜를 문화의 원천이라 본데 반하여 「스킬더」 교수는 일반 은혜를 하나님의 섭리에 돌려 일반 은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역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국한 되는 제한적 개념으로 볼 수 없고 온 우주를 향한 다스림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볼 때,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 속에는 구원의 은혜 영역 안에 있는 불가견적 교회 이외의 세상에 대한 다스림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불가견적 교회에 대한 은혜와 구별되는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편의상 그것을 일반 은혜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거기에 큰 무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 은혜와 일반 은혜, 이 두 가지 양식의 은혜는 다 그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에 두고 있다. 십자가에서의 희생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부여하게 할 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 대한 세속적 축복도 허락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는 은혜와 일반 은혜는 서로 명확히 구별된다. 전자는 영원히 구원하는 것인 반면 후자는 심판을 유예하시는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관용을 베푸시는 것에 불과하다. 결코 심판의 면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은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그분의 선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들을 향해서도 그런 자세를 가지라고 촉구하신다(마5:43-48). 하나님의 일반 은혜는 ①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롬2:4), ②인간의 현세적 삶이 가능하도록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제어하여 죄의 팽창을 제재하심(창6:3, 20:6), ③사람들에게 각각 재능과 양심을 부여하심(창4:20-22, 롬2:14-15), ④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심(시145:9,14-16, 눅6:35-36, 행14:16-17), 5.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과 가정과 문화생활과 국가를 형성하고 유지하게 하심(창3:19-21, 4:20-22, 롬13:1-4) 등으로 나타난다.

죄와 허물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일반 은혜를 통하여 선한 의지를 북돋아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하며 문화를 이룩하도록 하신다. 이러한 모든 은혜 가운데서 그 은혜를 깨닫는 자들, 비록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구체적인 사실은 모를지라도 자신의 삶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은혜로 존재함을 자각하는 자들은 그래도 겸손과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를 형성하게 되며 나아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은혜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며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힘들고 악하게 만들어 간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주 안에서 새로워진 선한 삶, 즉 진실하고 성결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인격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일반 은혜를 베푸시는 목적은 인간들의 선한 의지를 북돋아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하며 문화를 이룩하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결국 은혜에는 그것이 구원의 은혜이든 일반 은혜이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선한 삶을 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책임은 더 할 나위 없이 중하다고 하겠다.

서울 강남에 소재한 대형교회인 S교회에서 부목사들이 담임목사를 폭행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연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Y교회는 가족들과 그 뒤에 줄을 선 교인들 세력이 피차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면서 서로 간에 횡령, 사기, 협박 등의 비리를 폭로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어떤 목사의 비위를 지적했다가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고, 억울하게 목사직에게 제명 당한 경험도 있다. 그 목사는 계속해서 비리를 저질렀다가 최근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또 다른 어떤 목사는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도와주는 척 하면서 결과적으로 내 목회지를 빼앗고 그 과정에서 브로커를 앞세워 거짓과 폭행과 협박 등을 일삼으며 근 1년 동안이나 나와 내 가족을 괴롭혔다. 그 목사는 나에게 접근하기 이전에 다른 목사에게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접근하여 결국은 그 목사의 목회지를 빼앗아 교회 건물 중 일부를 이단에게 팔아넘기기도 했고, 최근에는 부도 위기에 처한 자기 교회 장로에게도 역시 도와주는 척 접근하여 그 장로의 재산을 탈취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거짓으로 일관하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또 우리는 그동안 교단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통합 이후에 일부 목회자들이 거짓과 기만과 불의한 술수를 동원하여 교단에서 불법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불법으로 이탈한 사람들끼리 다시 통합한다는 구실로 이합집산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이 통합을 위해 만들었다는 헌법개정안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보니 오로지 한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항과 상회(교단이나 지방회)가 개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조항, 당회장이 임명한 담임목사(내지는 재단법인에 편입되어 있는 교회의 목회자)는 치리권이 없다는 독소적 조항(한 마디로 특정인들을 위한 교권을 강화하겠다는 독재적 조항)들을 삽입하기 위한 개정작업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끄러운 행위를 계속할 것인가?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이상의 일부 예들을 통해서 보듯이 소위 교회 안에 있는 자들, 더욱이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은혜의 책임을 망각하고 망령된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모습은 아직 불가견적 교회로 확립되지 못한 부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한편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과거의 부끄러운 행위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바른 길을 가야 하겠다. 우리가 진정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불가견적 교회에 속해 있다면 주 안에서 새로워진 선한 삶, 즉 진실하고 성결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에게서 보여지게 될 것이다.

기하성(통합) 법무국장, 총회 목회대학원 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