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예배자' 김길 목사 세상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있으면 된다.
서울 한복판 명동이 자신의 목회지요 예배처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중앙우체국 앞 오전 10시 반이면
2,30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짦은 기도를 마친후 다시 흩어진다. 네다섯 명으로 구성된 그룹들은 명동 곳곳을 돌며 기도를 드린다.
도시를 위한 중보기도다. 다시 오후 2시, 이들은 중앙우체국 세미나실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 예배의 인도자 김길 목사. 그는 서울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들을 기도와 예배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드는 비전을 가진 '대도시
선교사'다. "처음 분당에서 성도 70-80명 이상이 출석하는 안디옥선교교회를 개척했었어요. 성전이 비좁아 3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로 옮겨볼 계획이었고 5년 뒤에는 분립할 계획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내려놓으라고
하셨어요." 잘 나가는 교회를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그가 찾은 곳이 명동. "대도시 중심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그곳에
주님의 주권과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는 조선에 교회가 없을 때는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교회를 많이 세우셨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많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해보라는 듯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도 응답으로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향력이 들어나는 교회를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명동의 신실한 교회라는 뜻을 가진
‘명신교회’(明信敎會). 이 교회를 세울 때 그는 자신의 핸드폰의 주소록을 모두다 지웠다. 혹여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몇 개월간 홀로 명동에서 기타를 매고 기도를 드리며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는 도시를 위해 기도 드리고 있다. 누군가 도시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를 만나고 싶다면 일요일 서울 명동에 가면 된다. 명동은 그의 교구다. "명동에서
드리는 주일예배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마치 전도여행을 가서 드리는 기도와 부어주시는 은혜처럼 감동과 은혜가 이 예배있습니다." 그는 2시
예배를 드리고 소그룹인 '비전그룹'의 제자훈련을 했다. 청년들에게 하나님 앞에 어떤 비전으로 쓰임받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돕는 것이
자신의 미션이라고 했다. 그것을 구체화 시키도록 돕고 그것이 구체화 되면 비전그룹이 된다. 그렇게 세워진 공식리더는 현재 17명. "저는
이들이 아시아의 도시들을 목표로 삼아 기도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모두가 목회자가 되라는 뜻은 아니지요." 리더들 대부분 2,30대
청년들이고 직장인이기에 그는 리더들이 직장에서도 섬기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강권한다고 했다. "자신의 비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전을 주지 않으면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어요." 그는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5년간 캠퍼스 개척사역을 했었다. 현재는 국제유학생수련회(KOSTA)와 예수전도단 제자훈련학교(DTS)의 강사로 활동하며
고난의 이유를 묻는 세대를 향해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는 한세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했다. 3년간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생활도 즐거웠다는 김 목사. "성령 하나님을 깊게 만나고 체험케 하고자 그곳에 보내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가 '도시선교사'가
되기까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최근 '증언'(규장)이라는 책을 펴낸 김 목사.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썼다. "아홉 살 때, 큰형과 싸우던 아버지는 자살하고 형제들은 갈라져 따로 살았다.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들이 어머니를 구타한 다음 날, 어머니는 사라졌다. 맡긴 돈을 큰형이 다 써버린 걸 알게된 셋째 형은 아버지처럼 약을
먹었고, 둘째 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출했고, 누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떤 남자를 따나 떠났다. 넷째 형은 중학교 3학년 때
가출했다." 그의 가족사다. 그의 이름(김길, 金吉)대로라면 길한 인생이어야 했다. 하지만 전혀 길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삶의 질고가 왜 일어난 것인지 되돌아보고 통찰했다. 결론은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타인의 어려움도 공감할 수 없었겠다는
것이다. 가정을 통한 고난이 컷던 만큼 그가 전하는 가정사역의 체험과 교훈도 크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정서의
핵심인 십자가'에 다가서서 예수와 함께 죽고, 그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 복된(길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달려온 삶'이다.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한 것인양 그의 삶은 깊고 모진 고난이 있었고 은혜는 풍성하게 넘친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이든지 그 사명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저는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벗어나는 것은
저에겐 타락을 의미하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데로 따라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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