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 사람 눅 10:30-31
때가 악한 지라 졸지에 무서운 강도를 만난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왜 강도를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예루살렘,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서 이 세상, 무서운 사마리아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길은 얼마나 험준한지 보통 사람들은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같은 사마리아로 내려간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올라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내려가고 있는가?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하였다. 마치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 같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는 살 수가 없다. 다윗은 “내가 주를 떠나서 어디로 가오리까. 물속으로 들어가도 산속으로 들어가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길이 없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옵시고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간곡히 회개했다(시 51:12).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하고 하였다. “.......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렘 17:5-6) 산 고기는 내려오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고기는 물결에 따라 흘러 내려간다. 이와 같이 생명이 산 자, 성령을 받은 자는 항상 천성을 향하여 올라간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자, 생명이 거듭나지 못한 자는 항상 세상 속에서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아간다. 소돔성의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들어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서는 구원받았으나 성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마하고 의심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뒤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녀는 불타는 소돔성을 바라보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의 롯의 아내 같은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며, 죽도록 충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가 잘 믿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시험이 닥쳐올 때 그 사람의 인격적 신앙을 알 수가 있다. 사단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는가?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할 것이다. 믿는 자는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다(잠 24:16).
둘째, 실천이 없는 제사장
그 당시에 제사장은 매일같이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고 속죄제, 화목제 등 제사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종교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의 처지와 신음소리, 구원의 요청을 들었다. 그러나 외면하고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렸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늘도 교회 목자라고 하면서 사랑을 부르짖고 매일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막상 성도가 강도 만난 것을 보고도 알고도 못 본 체하는 삯꾼 목자들, 무사안일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진 제사장들이 많이 있다. 알고도 행치 않는 자는 많이 맞는다고 했다. 어떤 목회자가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다. 두 사람은 서로가 신분을 잘 모르니까 언성이 높아지고 나중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하게 됐다. 이때 목사님 차 안에 네 살 된 딸이 말하길 “아빠가 잘못하지 않았어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는 어린 딸에게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얼굴이 붉어져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목사님이십니까?” 저는 안수집사입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내 교회 교인만 교인이고, 다른 교회에 다니는 교인은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방 사람이든 택한 사람이든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셋째, 외면하고 지나간 레위 사람
오늘날 레위 사람은 누구인가? “뱀을 피해서 가면 독사를 만나고, 독사를 피해서 가면 사자를 만나고, 사자를 피해서 가면 곰을 만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교회나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한 것을 보고 피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 주위에, 아니 교회 안에 강도 만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목요일 밤에는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금을 한다고 강사가 광고했다. 그런데 그때 가난한 성도들은 다 동참했지만 꼭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날 밤 나와야 할 그 사람의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그 강도가 모든 것을 가지고 가면서 “교회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경도 모르는가?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면 도둑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땅에 쌓아두면 도둑이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 28:27)
넷째, 선한 사마리아 사람
그는 이방 사람이요, 이름도 빛도 명예도 없고 여행 중에 있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는 부자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하루하루 상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자마자 나귀에서 내려 가까이 가서 응급치료를 해준 사람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하고 먼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 주고 싸매어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집으로 피신시켰다. 참으로 이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있을까? 자기의 시간, 물질 등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바친 것이다. 강도 만난 자는 불행 중 다행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났다. 참으로 좋으신 분이다. 죽을 사람도 사람 잘 만나면 살 수 있고, 살 사람도 사람을 잘못 만나면 죽을 수 있다. 육체의 강도, 물질의 강도, 남편, 자녀, 재산, 생명 등 이 지구상에서 강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을 만나기 바란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부르셨으니 지금이라도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다 아시고 찾고 계신다. 버림당한 사람일지라도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데리고 주막집으로 갔다. 주막집에는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마실 물, 새 술이 있어야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오늘 현대의 주막집은 어디인가? 교회이다. 여러분, 교회도 주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풍성한 꼴이 있고, 성령의 새 술이 있고, 사랑이 넘치고, 나의 영혼이 편히 쉴 곳이어야 한다. 교회가 크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실상은 조그마한 주막집 교회, 인류의 시초의 교회가 베들레햄 마구간에 있었다. 주막집 주인은 누구인가?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주막집 주인은 목회자이다. 목회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양떼를 잘 돌보아 주라는 부탁을 받고 선불까지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봉사하다가 칭찬받는 종과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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