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푸른초장 맑은시내-조용목 목사2015-10-22 10:52
작성자 Level 8

‘낙심치 않는 이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6∼18)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 중에서 공통적인 것 두 가지를 추출하면 육신의 쇠퇴와 환난이 해당될 것입니다. 늙음과 죽음에 대해 저항하는 그 크기만큼 낙심하게 됩니다. 또한 일생동안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환난도 사람을 낙심케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육신의 쇠퇴와 환난도 성도들을 낙심케 하지 못합니다. 본문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겉 사람이 후패하여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겉 사람’은 죽을 육체를, ‘속 사람’은 죄의 본성에 오염되고 지배되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생명을 가진 새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쇠퇴하는 육신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우리 영혼은 손으로 짓지 아니하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영생하는 속 사람에게 걸맞는 겉 사람을 입게 되는 날이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불신자들은 육신의 쇠퇴를 경험하면서 탄식하며 낙심하다가 드디어는 체념하고 맙니다.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늙음과 죽음은 절망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과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성도들은 신령한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집니다.
 둘째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환난은 대체로 근심, 두려움, 슬픔, 불편, 상실, 고통, 이별 같은 것을 수반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라는 말에는 ‘가볍다’라는 형용사가 부적절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환난의 경한 것’ 달리 말하여 ‘가벼운 환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들을 열거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받는 환난은 우리가 범한 죄악의 중함에 비하면 가볍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였고, 그 날 이후 인간 사회는 악행과 쟁투와 살인으로 얼룩지고 자연의 위협과 온갖 질병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받으신 고난에 감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받는 환난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변화와 소득이 매우 중하기 때문입니다. 분수를 넘는 욕심과 교만을 버리게 되고, 환난 당한 자들을 이해하고 돕게 되며, 하나님만 의뢰하여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천국을 사모하게 됩니다. 넷째, 장차 누릴 영광과 비교할 때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음 때문에, 주의 일에 힘쓰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당하는 손실, 희생, 핍박 등의 환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환난’이라는 영광스러운 의미가 있습니다. 다섯째,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잠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지루한 환난을 겪는다고 하여도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시선을 고정시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쇠퇴하는 육신에 눈을 고정시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천국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에 눈을 고정시키지 말고 환난이 복이 되고 고난이 영광이 될 것을, 환난으로 얻게 될 소득을, 장차 누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그리하여 항상 담대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은혜와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