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회자칼럼-서헌철 목사2016-06-17 16:24
작성자 Level 8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

 수천 마리의 생쥐와 집쥐들이 순식간에 달려 나와 자신들의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궁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놈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그들을 위협하고 마음대로 잡고 발톱을 세워 쥐들을 던지며 위험한 장난을 하곤 했다. 쥐들이 말했다. “우리는 공포 때문에 감히 밖을 내다볼 수조차 없었다. 만일 우리가 고양이의 놀이에 항의하면 그는 우리를 할퀴고 발톱으로 움켜잡으며 괴롭힐 것이다. 그가 우리를 떨어뜨릴 때면 이미 우리의 삶은 슬픔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욕망을 꺾어놓을 계략만 있다면 군주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설득력 있는 언변을 가진 명망 있는 쥐가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해 보이는 해결책을 제안했다. “런던에서 많은 사람이 목에 빛나는 목걸이와 화려한 목장식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사람이 밀집한 장소와 그들이 좋아하는 이 세상 어디든지 목줄도 없이 돌아다닌다. 세상에! 만약 그들의 목걸이에 방울을 단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도망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이나 은으로 만든 방울을 사서 고양이의 목에 거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어디로 가는지, 휴식을 취하는지, 혹은 밖에서 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만일 그가 놀고 싶은 기분이라면 그 앞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만일 그가 기분 나쁜 상태라면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의 면전에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그곳에 있던 모든 쥐들이 이 주장에 환호했다. 그러나 방울을 사서 목걸이에 달아야 할 때, 프랑스 땅 전부를 주고 영국을 몽땅 준다고 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를 가진 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들은 그 임무를 수행할 용기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계략은 참담한 실패였고, 그들의 노력과 심사숙고도 모두 헛된 일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매우 지각 있어 보이는 어떤 쥐가 단호하게 나서서 모든 쥐들 앞에서 말했다. “비록 우리가 그 고양이를 죽인다 해도 또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 의자 아래 숨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내 충고는 고양이를 내버려 두자는 것이다. 그의 눈앞에서 방울을 달려고 성급하게 굴지 말자는 것이다. ~ 그의 권위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맙시다. 비록 우리가 한 명의 독재자를 제거한다고 해도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해악과 슬픔보다 작은 손실이 더 낫다. ~ 만일 너희 시궁쥐들이 마음대로 한다면 너희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 비록 방울을 사는 데 돈을 내지 않았지만 목걸이에 대한 모든 논의에 반대하며 돈을 냈다 할지라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할 것이다. 고양이 목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자유롭게 사냥하도록 하라. 그리고 여기 있는 자들에게 하는 내 충고는 자기 자신의 일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출처 : 농부 피어스의 꿈)
 14C의 유럽? 그런데 21C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이다지도 인간은 달라질 수 없는 존재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더욱 어두움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까?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손에는 부정부패로 가득, 공의(公義)는 실종(失踪), 혀는 독설을 품어대지만, 한 때 “가만있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나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 가듯, 삼팔선과 같이,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사이에도 철조망이 세워지는 등, 자신이 움켜진 것은 어떤 죄악을 행해서라도 내려놓지 못하겠다는 현실 앞에서, 진정 “자신의 일에만 충실 하라”는 말에 동의해야 ‘그리스도인’일까?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 하시느니라 (3)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2-3)

장로회신학, 장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