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白衣從軍)의 예술가
고린도전서 4: 2
예술가들마다 자신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영감의 장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악적 고향은 비엔나(Wien)였습니다. 광기어린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마음의 도시는 오베르 쉬르 아즈(Auvers-Sur-Oise)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예술인들이 예술적 고향으로 삼는 곳이 있는데 바로 ‘통영’입니다. 윤이상, 박경리, 유치진, 김춘수, 전용린 등의 위대한 예술인들과, 한국의 고흐라 불리는 화가 이중섭의 예술적 토양도 통영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소’는 물론, 그의 유화작품들 대부분이 통영에서 그려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통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과 예술가들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통영이라는 이름은 그리 예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릿발이 느껴지는 군사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통영은‘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준말입니다.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충청, 호남, 영남, 세 지역의 해군을 관할하는 해군 사령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해군은 주변국가로부터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데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실상,‘국가 방위 총사령부’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통영이 문화, 예술의 도시로 인식되는 것은 당시 전국의 핵심적인 고관들과 가족들이 그곳으로 모였기에 자연스레 그 지역이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된 까닭입니다.
한 때 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이끌었던 분이 바로 한국사 최고 영웅인 이순신 장군입니다. 그가 한산도에 머물면서 삼도수군통제영을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산도의 29개의 마을 이름이 전부 이순신장군 관련 이름들이고, 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하게 된 통영 지역에는 지금도 제승당, 충렬사, 세병관 등의 충무공을 기념하는 명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순신을 영웅적 존재로 만든 계기는 바로 임진왜란 중에 있었던 한산대첩(閑山大捷)입니다. 그 전투에서 이순신은 지형을 이용한 학익진 전략으로 거의 예술에 가까운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 선조는 충신인 이순신을 오해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시킵니다. 그리고 후에 잇따른 전투의 패배로 나라가 절대적 위기에 부딪히자 그를 다시 부릅니다. 그 때, 이순신에게 주어진 군함은 겨우 12척. 그럼에도 이순신은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 12척으로 진도의 울돌목에서 왜군의 배 300척을 무찌릅니다. 그것이 명량대첩(鳴梁大捷)입니다. 그 결과, 호남의 곡창을 쳐서 군량미를 확보하려고 한 풍신수길 군대의 길은 막혀버렸고, 왜군들은 한 마디로 굶어죽게 됩니다. 오해와 질투로 이순신을 내쳤었던 선조는 이순신의 사후에 이 같은 시를 썼습니다. “만리장성 무너지니 누구를 의지할꼬. 나라여 복도 없다. 하늘만 아득하네.”
전장의 예술가 이순신의 위대함은 그가 보여준 그림 같은 지략, 혹은 23전 23승의 놀라운 전승전력보다는 백의종군 후에도 국가와 백성들에게 바친 ‘흔들림 없는 충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전부를 녹여서 전장에 수놓았던 이순신! 그는 진정한 화가였고, 그의 도시 통영 또한 예술의 도시가 맞습니다.
여호수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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