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목양칼럼-서헌철 목사2016-12-16 15:44
작성자 Level 8

우리의 책임은 없다?

  유몽인(柳夢寅)의 야담집 ‘어우야담’에는 ‘이이첨’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떳떳한 기강이 저리도 시퍼런데, 백성의 질고를 소생시킬 계책은 없구나.
              생사를 좌우하는 신령스러운 돈, 관료들에게선 돈 냄새만 물씬 난다.
              문풍은 날로 땅에 떨어지고, 선비는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었구나.
  이 시는 “권력은 폭압적이고 기세등등한데 관리들은 부정부패에 젖어 질곡에 빠진 백성들을 구할 묘책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일과 심지어 죽고 사는 일도 돈이 좌우 하는 어지러운 현실이다. 관료는 돈 냄새만 풍기며, 글을 읽는 풍조는 이 당에 없어지고 지식인은 입을 닫고 귀를 막았구나.”라고 읊고 있다.
  어느 시대나 관료들이 부패하고 지식인이 입을 닫을 때 백성들은 질곡의 깊은 수렁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라의 기강이 설리 없고 민초들의 원한은 하늘에 닿는다. 이 시는 당시의 부정부패(不正腐敗)의 온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 주범이 바로 ‘이이첨’이라는 간신(奸臣)임을 말하고자하는 시이다.
  ‘이이첨’ 일파의 책략으로 인해 ‘광해군’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추방하여 어진 선비가 죄에 걸리지 않으면 초야로 숨어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였다. 또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켜 해마다 쉴 새가 없었고, 간신배가 조정에 가득 차고 후궁이 정사를 어지럽히어 크고 작은 벼슬아치의 임명이 모두 뇌물로 거래되었으며, 법도가 없이 가혹하게 거두어들임으로써 백성들이 질곡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보다 못한 영남의 유생 400명이 식량까지 싸가지고 서울로 와 궁 앞에 엎드려 ‘이이첨’에 대한 탄핵상소를 수차에 걸쳐 올린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 상소에 대해 초야와 조정은 다르며 대신은 나라의 기둥인데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며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라고 명한다. 이렇듯 온 나라가 ‘이이첨’의 횡포를 탄핵하고 읍소하였음에도 그는 끄떡없는 듯 했으나, 결국 1623년 ‘인조의 반정’에 의해 ‘광해’는 쫓겨나고 ‘이이첨’은  가족과 함께 참형에 처해졌다.(출처 :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작금의 ‘최태민’에 이은 ‘최순실 게이트’라는 소용돌이에 ‘대한민국 호’는 태풍이 몰아치는 대양위의 배(船)와 같다. 우리 개신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한민국 호’의 방향키를 굳게 잡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욕망에 눈이 멀고,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매몰되고, 보수주의 신학과 진보주의 신학으로 재단하는 등으로 사고에 혼란을 불러 오는 등, 이시대의 ‘이이첨’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하는 이들로 인하여 오늘의 아픔을 불러오지는 않았을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나 보수주의신학 진보주의신학의 대립이 아닌 ‘최태민’에 이은 ‘최순실’ 등에 편승한 권력, 부정부패는 물론,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아픔의 외침이 있을 뿐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겨야 한다.”고 외치는 우리에게 과연 생명존중의 의식이 있는 것일까?(마 18:6 참조)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이첨’과 같은 간사(奸詐)를 행하는 간신(奸臣)들이 난무 할 뿐, 간사(諫死 임금이나 윗사람의 잘못을 죽음을 무릅쓰고 또는 죽음으로써 간함)를 행하는 간신(諫臣 임금에게 옳은 말로 간언하는 신하)의 부재가 오늘의 아픔을 불러 왔다는데서, 결코 “우리의 책임은 없다.”고 할 수가 없다.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奸詐)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여(사 32:6).

장로회신학 학장, 장신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