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요엘 2:17)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 말은 말하는 사람의 신앙상태와 말하는 이유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를 분석하면 네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말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여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인류 역사와 인간의 본성이라는 영역에서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그 증거입니다. 우주 만물은 우연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크기와 다양성 그리고 질서와 조화와 아름다움을 우리가 알면 알수록 신비감을 더하게 합니다. 자연계에는 사람이 바꾸거나 없앨 수 없는 법칙들이 존재합니다. 이 모든 일을 생각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우연을 믿는 것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둘째는,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족보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역사 가운데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로서 관여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신다는 증거가 너무나 역력하고 그 흥망성쇠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양심이라는 윤리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르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사람의 이런 본성이 입법자이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인간에게 있는 종교성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사람 외에는 어떤 동물에게서도 종교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으며 영혼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을 사모하며 신 개념을 가지고 종교 행위를 합니다. 둘째, 이 말은 불신자들이 환난에 처한 성도를 향하여 비웃는 소리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의기소침해 지며 낙심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참된 신자는 자신이 고난으로 인하여 겪는 고통보다 불신자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을 더 마음 아프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 권능을 나타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 이 말은 믿음이 연약해진 신자가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소리입니다. 당면한 결핍과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불만을 토로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또한 악인들의 번영과 형통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여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라는 회의에 가득 찬 말을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함을 받아 구원을 얻고 그 기쁨으로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천국을 사모하고 사는 것이 신앙의 주된 이유와 목적인 성도는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회의가 생기지 않습니다. 넷째, 이 말은 성도가 하나님께 도움을 갈망하는 호소입니다. 곤경에 처하거나 장애를 만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 권능과 도우심을 믿고 간구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과 지혜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도와주심을 바라면서 엘리사처럼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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