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최고 성지 매리설산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2017년 7월 3일부터 14일까지 엄기설 목사(교단 총무), 최형택 목사(교단 직전 총무), 정석현 목사(교단 증경지방회장)는 티벳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H 목사님의 선교지를 돌아보며 귀한 은혜의 시간을 함께하고 돌아왔다. 교단 선교사로 근 20년간 티벳지역에서 활동하는 H 목사님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방 선교에 앞장서서 티벳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특별히 몇 년 전 과로로 쓰러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그 멀고 험한 길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헌신과 열심은 열매로 나타나고 있음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7월 3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저녁 곤명에서 사역하시는 K 목사님의 자택에 도착하여 예배를 드리고 다음 날 따리로 출발하여 가정을 심방하며 복음을 전하는 현지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다음 날 리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H 목사님께서 티벳에 와서 정착하며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은 곳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은 샹드릴라로 향했다. 그곳은 H 목사님께서 현지인을 전도해 처음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은 장소이기도 했다. 현지인을 세워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는데 그동안 객잔을 비롯하여 휴게실까지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식처와 복음전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3-4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많은 물질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아직도 미완성된 부분이 남아 있었는데 H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물질과 하나님의 은혜로 공사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곳 가족들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웃음을 잃지 않고 주의 종을 섬기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티벳의 성지라 불리는 매리설산(해발6736M)으로 향했다. 쉴 틈이 없는 강행군이었다. 티벳 지역은 해발 2,000M가 되는 고지여서 숨이 가쁘고 심할 때는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면서 다녔다. 몇 걸음 걸어가면 입이 마르고, 약간의 두통도 동반했다. H 목사님은 고산병에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아침마다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부족함이 없다, 힘을 주신다”는 구호를 매일 매일 외치면서 힘을 얻으며 나아갔다. 매리설산을 향해 가면서 그 험한 산길들이 예전 티벳의 차를 말에 싣고 떠나던 마방들의 길인 차마고도를 지났다. 산이 2,500~3,000M 의 높은 위치에 있기에 구름들이 산허리에 둘러있었다. 경치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그 험난한 길을 가족들을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길을 떠났던 마방들이 다니던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길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순간 저 멀리 구름에 가려 있던 설산이 잠깐 동안 보이기 시작했다. 일행은 환호를 지르며 감사하면서 설산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샹그릴라에 도착하여 내일 날이 맑아지기를 기원하면서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간밤에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구름이 온통 앞을 가리고 있었다. 또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H 목사님은 우비를 입도록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산악지역이라 날씨의 변동이 매우 심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비가 그치고 구름만 흘러가고 있었다. 드디어 매리 설산 입구에 도착했다. 선교사님은 길이 험해 노새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하여 일행은 노새에 올랐다. 가는 도중에 2번 주막 같은 곳에서 쉬고 3시간가량 걸려 산 고개 정상에 다다랐다. 드디어 바로 손에 잡힐 듯 매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순간순간 구름이 흘러가 가려진 신비의 눈 덮인 산의 베일을 벗고 있었다. 일행은 환호와 감사와 찬양을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저 아래 여성 두 자매가 산을 올라오면서 주춤거리며 우리 일행을 보고 웃었다. 말이 안 통해 그냥 지나가려다 “피어링(이쁘다, 귀엽다)”이라고 했더니 좋아라하며 웃었다. 실은 이 말은 어린아이들에게 사용되는 말인데도 그들은 웃으며 우리 일행들에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일행은 첫 번째 마을 입구의 첫 번째 집에 여장을 풀었다. 얼마 후 나는 바로 건너 앞산에 있는 빙하를 만져 보고 싶었다. 내 생각으로는 1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 같았다. 그래서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며 길을 내려가 빙하로 올라가는데 산길이라 1시간을 가도 빙하에 갈 수 없었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려서 할 수 없이 그냥 객잔으로 돌아오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다. 주저앉아 쉬고 싶었지만 모두 비에 젖어 그냥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객잔을 행해 올라갔다. 힘들게 객잔을 향해 올라가는데 몇 시간 전에 산에서 만난 두 자매를 만났다. 자매는 나를 자기 객잔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서투른 말과 손짓으로 얘기하며 우리 일행을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데리고 다시 객잔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인연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H 선교사님은 당신이 이 마을에 찾아와서 6년을 기도했는데 이제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고 감격했다. 바로 이 객잔이 초대교회 바울 일행을 맞은 자주장사 루디아처럼 예배드릴 장소를 자매가 허락했던 것이다. 할렐루야! 이 자매 중 한 분은 예전에 예수님을 믿었지만 지금은 지도자(목사)가 없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찬양을 하고 다음날은 아예 숙소를 자매들의 객잔으로 옮겼다. 다음날 일찍 설산을 향해 올랐다. 비가 내려가는 도중 길이 끊겨 옆으로 돌아서 한 걸음 한걸음 올랐다. 근 3-4시간을 올라갔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함께 동행한 최 목사님께서 자기는 동네 앞산도 한번 안 올라갔는데 이게 웬일이냐고 하며 몇 번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함께 부축하며 동료애를 발휘해 걸어서 갈 수 있는 정상까지 (3,700m) 올라갔다.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한 일이라며 감사하며 기뻐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설산, 비록 정상은 아니지만(이 산은 아무도 정복하지 못하고, 정부에서 허락을 안함), 걸어서 갈 수 있는 최상의 끝자락에서서 주위 온통 타초르(빨, 노, 파, 흰, 초록색 깃발)와 릉따(티벳 경전)가 바람에 휘날렸지만,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 최 목사님께서 너무 힘들어하여 비도 오는데 노새라도 타고 가야 되겠다고 했다. 선교사님은 지금 여기서 부르면 올라오는 데만 3시간 걸리기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상의 주막에서 잠시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또 한 번 응답이 왔다. 라마승 3명이 노새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와 하나님께서 최 목사님 기도에 바로 응답해주셨네 하며 덕분에 우리 일행은 노새를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자매의 객잔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비록 성도는 자매님 둘 뿐이었지만 말씀을 전하시는 H 선교사님은 목이 메었고, 눈물이 고였다. 감격 자체였다. 이 불모의 땅, 온통 티벳 우상이 만연한 이곳, 그들의 최고의 성지인 설산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이요 섭리였다. 선교사님은 절 마당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린 거나 다름이 없다는 표현을 했다. 앞으로의 예배는 메신저로 드리기로 했고, 우리 일행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두 자매는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젖었다. 가지 말라고 붙잡으려 노래까지 했다. 우리 일행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설산을 내려와 샹드릴라로 향했다. 다음 날 리장으로 내려와 목사님의 선교지역을 둘러보며(보통 거리가 2-4시간 거리요, 1~2일 거리였다) 수요예배는 석지교회에서 드리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산길을 몇 시간 걸려서 차에서 내리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교회로 향했는데 여러 성도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배 후에 성도들이 준비한 귀한 음식을 먹으며 교제를 나누고 작별을 고했다. 다시 시내로 내려와 귀국할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야간 침대열차로 곤명에 도착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운전과 섬김으로 봉사해준 나리장 형제와 초리자매에게 감사드리며, H 목사님과 사모님의 선교사역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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