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을 외치면 다시 눈 뜬다.
저의 아버지는 지난 날 배우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제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매우 특이한 체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임종을 여러 번 지켜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마다, 그것이 분명 연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마음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힘겨운 임종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림을 느끼기도 했고 두 눈에는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컷, 하고 외치면 아버지는 언제나 다시 눈을 뜨시고 누우신 채로 곁에 서 있던 저를 보시며 윙크를 하시거나 익살스런 웃음을 지어보이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아버지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여드리곤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은 마음이 여린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일종의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이 정말 현실이 되었던 날에, 아주 잠깐 동안 이었지만 문득 ‘나는 지금 아버지의 연기를 보고 있다.’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아버지께서 곧 눈을 뜨실 것이라는 상상도 했었습니다. 어린 아이 같은 발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인 감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기독교의 부활신학(theology of resurrection)이란 피부로 느끼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여러 차례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목도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드라마 안에 살고 있는 주연배우들입니다. 그 드라마에는 희극처럼 즐거운 신(scene)도 있고, 비극처럼 눈물짓는 신도 있습니다. 가끔은 대서사처럼 풍랑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무지막지한 고비를 넘기는 신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갖가지 신들의 명확한 존재 이유는 오직 총감독이신 하나님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순간순간, 주어진 장면에 몰입하며 사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그림의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조차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드라마의 시나리오의 바탕이 되는 원작, 즉 성경을 제대로 안 읽어본 까닭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위한 영생의 길을 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삶이 원작이 되어 우리의 삶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드라마가 완결되는 순간에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연기로 마무리를 하게 되겠지만,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실 것입니다. “컷! 굿! 아주, 좋았어. 자네 정말 최고였네! 내 생각에는 걸작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수고 많았어. 이제는 푹 좀 쉬게나.”부활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감독이 컷을 외치면 다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온선교회 담임, 고 문오장 목사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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