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관계에 조심할 것 <야고보서 2:1~7>
김 기 원 목사 / 장위제일교회 원로목사
신앙생활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교회 내에 성도들간의 인간관계는 믿음에 기초한 인간관계이어야 합니다. 첫째, 차별대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의 핵심은 사람을 외보로 봅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싫어하고 차별합니다. 인본주의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들이 있을 때 차별대우합니다.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인간관계는 믿음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되어야 하고, 은혜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보실 때 믿음을 보시듯이, 우리의 인간관계도 믿음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원한 관계를 가지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수준을 맞추셨습니다. 본문에 외모란 ‘편애’, ‘편파적’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차별대우처럼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 없습니다. 그러나 차별 안 하기도 정말 힘듭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되어 버리는 것이 차별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됩니다. 믿음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은혜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말씀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사랑에 근거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인간관계 실패는 교회생활 실패입니다. 인간관계 실패는 신앙생활 실패입니다. 인간관계 실패는 봉사와 사랑의 생활도 실패입니다. 인격의 성숙과 신앙의 성숙은 인간관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할 때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둘째, 차별은 악한 것입니다. 죄악입니다. 차별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결과입니다. 차별은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차별은 인간의 가치를 차별하는 행위입니다. 차별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택할 때도 보면 믿음을 보셨습니다. 셋째, 차별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대표적 증거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편애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이기주의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자기기준입니다. 편애는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관점에서 참된 인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말씀의 명령에 순종하는 인간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자를 미워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다섯째, 인간관계에 따른 우리의 행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것은 죄로 여기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은 죄로 여기지 않는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이웃과의 잘못된 관계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선민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인간관계는 어떻습니까? 조심은 인간관계에 발전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소위를 살펴 인간관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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