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 김상용 목사2010-05-13 09:35
작성자 Level 8

고전 13:4

김상용 목사(청주중앙순복음교회)
상임운영위원

사랑은 무엇보다도 위대합니다. 어떤 아름다운 말보다도 많은 능력보다도 어떤 희생보다도 위대합니다. 왜냐 하면 사랑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유익이 없고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찬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사랑에 대한 본질을 다루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사랑의 특성 15가지 중에 먼저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다는 이 두 가지를 말씀드림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랑은 오래 참고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 옵니다. 인내라고 하는 것은 끓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열매를 가져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라는 말의 의미에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어려움을 견디는 것을 포함합니다.
첫째,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소극적인 의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참는 것이고 적극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참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자신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을 우리들이 여기서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욥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마귀가 와서 그의 전 재산을 다 빼앗고 불태워가고 그 자녀들까지 죽이는 비참한 일을 당하는 시험이 닥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 앞에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는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하고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욥은 오래참고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역경과 환난, 어려움을 당할 때 갈팡질팡하고 이리가고 저리가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때는 우리가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만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참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당했을 때 그것을 보복할 힘이 있으면서도 참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한 손해를 보복할 수 없을 때에 보복하지 않는 것은 자기 약점을 의미하지만 내가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인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것은 용서하는 마음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용서를 해야 할까요? 베드로가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 만약 형제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내가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하고 거기다가 일흔 번이라도 하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한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무한정하는 용서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그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넷째,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이익과 감정을 희생해 가면서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고전 6:7)라고 했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되지 아니하며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가 세워지며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성도들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덕을 세우는 것이 오래 참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자신의 손해와 불명예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온유하고
온유하다고 하는 것은 쓸모가 있다, 용도에 맞다,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착하고 선하지만 과연 나는 교회에 유용한 사람인가 유용하지 않은 사람인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온유하다고 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으로써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죄를 짓는 자에 대해서 단순히 참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선의에 봉사와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이 사랑의 속성 가운데에 온유함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겸손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겸손하셨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에서도 그의 겸손을 볼 수 있고 자라시면서도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시면서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골고루 대하셨습니다. 왕이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십자가를 지셔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그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습니다.
둘째, 온유함은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나타나는 속성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원래 성격이 급하고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백성들을 인도할 때 얼마나 온유했습니까? 백성들은 시간만 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 죽일려고 하였지만 모세는 그들에 대해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엎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말많고 불평하고 반역하는 백성들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가 가져야 할 품성 가운데에 하나가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없으면 항상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온유함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했습니다.
셋째, 우리가 선을 행할 때는 기쁨과 즐거운 마음에서 우러 나와서 해야 합니다. 성경은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고 말씀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즐거움으로 강도맞은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진실로 도와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헌신하고 예물드리는 이 모든 것이 자원하는 심령,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성에서 오래 참음과 온유의 성품은 인간 본성에서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오래 참음과 온유함의 특성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서는 행하기가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은 어리석다, 실패자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은 약자의 표시가 아니라 가장 강자의 표시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완전한 승리를 가져 오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안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든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채움을 받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