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여의도 이산가족 제조2009-09-11 08:47
작성자 Level 8

1. 천둥산 박달재에 님을 울려 넘게 하는 박달씨 남자야!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38번 국도를 달리면 사랑에 한이 많은 천둥산 박달재가 있고 지금은 박달재 터널까지 트여 있다.
경상도 청년 박달 씨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다가 민박집 처녀 금봉이를 사랑한 로맨스 전설적인 러브스토리 사랑이 되었든, 아니면 현실의 금봉이 처녀가 행복의 꿈을 안고 면사포 쓰고 결혼하여 박달 씨에게 시집을 왔던 간에 사랑에는 항상 서로 책임을 지고 끝까지 사랑하며 살아가야 참사람이다.
 ‘도토리묵을 싸서 사랑하는 금봉이 허리에 채워 보내주며 남자 박달씨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는 노래 가사내용의 사랑, 무슨 사랑이 세상에 이런 어설픈 사랑이 다 있나? 약산 진달래를 님 가시는 길에 고이 펴 주겠다는 김소월의 사랑이나,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돌아오기나 하라는 등의 아리랑 사랑등도 모두 시원찮은 주 밖의  세상적인 고무풍선사랑들이다. 알맹이 있는 복음적인 사랑이 못 된다. 복음적인 사랑은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강권 성 깡을 부리기도 하며 저돌적이고 선재공격의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원로 목사님이 슬며시 우리 통합교단을 벗어나서(긴가민가해 아리송하기만. 판단이 안서지만), 큰 범죄자들이 정관을 변조하는 도둑 촌에 윙크를 한번 보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사실이라면 필자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박달씨 류의 사랑을 칠칠치 못한 남자 사랑으로 보기 때문이다.

2. 금강산에서 금년 추석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단다.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감질 나는 사랑이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사랑이다. 북에는 얼마나 체제가 취약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이산가족을 금강산에서 상봉 시켜주며 돈을 챙기는 사랑장사를 하고 있는가?
그만 막힌 담 탁 터 남북이 서로 만나 영원히 함께 같이 사는 사랑의 대해를 이루며 살면 좋으련만, 그래도 금강산에서는 그 어떤 신호탄이기도 하고 시발 불씨 사랑이 될 가능성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니 다행이고 반갑지 않는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시즌에 여의도에는 이산가족 제조를 하고 있다니 주 안에서 이런 오명이 어디 있나? 울어 금봉이를 보내는 박달씨가 될 수 없어 필자는 이렇게 큰 소리 지르고 단호히 나선다. 금봉이 너와는 고락간에 생사 같이 하며 같이 살자는 명분이 있는 사랑의 筆戰, 재판도 불사하겠다는 역공 선언 경고성 메시지이다. 여의도 교회를 통합교단을 떠나 독자 아니면 주차장 도둑 촌으로는 절대로 보낼 수 없어. 책임 사랑이라는 명제 때문에 이산가족제조는 용서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에 저돌적이고 선재공격의 액선 사랑을 우리는 대담하게 계속 보일 것이다.

3. 그렇지만  총회원들 몰래 교단정관을 고치는 도둑촌 사람들의 간교한 교사(敎唆)로 말미암아 여의도에서는 위헌적인 헌법을 개정하고 복음사랑에 역행하여 슬금슬금 이산가족 제조를 하고 있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시작이자 족보인 근본 씨앗이 정관을 변조하는 주차장 측 도둑 촌에 여의도 교회는 과연 입 촌 할 것인가? 정관을 변조하는 도둑 근성의 근본 씨종자가 좋지 않는 주차장 측과 어울리고 교류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적어도 우리가 거듭남에 영적인 고향이고 우리만의 메카인 여의도 교회가 말이다. 우리는 무책임하고 애상에나 젖는 세속적인 사랑의 박달씨가 될 수는 없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하는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그 어떤 명분과 미명을 붙여서도 사익을 위하여 이산가족을 부추기거나 이산가족제조에 동참내지 방조하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자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난폭(질투)을 불사하는 선재공격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산가족 제조자들을 가만 두지 않으련다. 재판을 싫어한다면서 이산가족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스스로 재판춘추전국시대를 열자는 선언 자들이다. 못났다고 버리고 가면 진통이고 못나도 함께 가려 하면 상급으로 꿀이 흐른다.
‘모세가 손의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어 모세를 물려하고 징그러워 손을 내어 밀고 싶지 않지만 뱀 꼬리를 다시 잡으니 든든한 지팡이가 되고’(출4:2~4). 쉬운 답과 평안한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천등산박달재의 박달 씨는.
 2009.9.6. 이원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