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무슬림들의 신(神)일뿐
- 볼프 교수의 정치신학적 ?알라?는 종교다원주의 사단의 계략
- 이슬람 꾸란에 가장 헌신된 그룹은 IS대원들
- IS의 무자비한 테러와 파괴는 알라가 어떤 신인지를 증명해
- 교회 안에 이슬람선전자를 강단에 세우는 것은 이슬람의 타끼야(위장) 선교전략 에 속는 위험한 모험 당장 중지해야
최근 미국 예일대의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교수의 저서 ?알라?가 국내 기독교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볼프 교수는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인데, 기독교와 무슬림이 동일한 대상을 섬기고, 예배하면서도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성경이나 꾸란(이슬람 경전)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유일신이시고, 초월자이시고, 선한 존재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 유사성으로 인하여, 같은 신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볼프 교수의 생각은 그가 크로아티아 출신으로서 1990년대 유고연방에서 종교간 갈등의 비극을 경험했고, 현재 교수로 있는 미국에서도 2001년 무슬림에 의한 9?11테러를 경험하면서, 기독교와 무슬림 간의 대화를 위한 접촉점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물론, 종교 간 문제로, ‘인종 청소’나 ‘종교 차별’이나 심지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현재 무슬림들에 의하여 자행되고 있는 ‘무차별적 살해’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매우 위험한 것은,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이슬람에서 믿는 알라가 신적 유사성이 있다고 하여,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는 볼프 교수의 주장으로, 그는 ‘정치신학’을 빙자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려는 종교다원주의 적 발상이며, 사단의 계략이다.
이슬람은 기독교를 공략하기 위해 타끼야(거짓말을 허용하는 교리)를 활용한 선교전략으로 기독교인들을 혼동에 빠지게 함으로 이슬람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 중에 가장 그럴듯한 전략이 하나님과 알라는 동일 신이라는 거다. 한글로 된 꾸란도 역시 ‘알라’를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과 알라는 동일한 신이라는 혼동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알라(Alah)는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족이 섬기던 종족신인 달신(Moon god)이었다. 달신의 딸들은 알라트, 웃짜, 마나트 였다. 이슬람 모스크 첨탑에 부착되어있는 초생달과 이슬람국가의 국기마다 그려져 있는 초생달을 보면 알 수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면 초생달은 이슬람의 상징이다. 알라를 어찌 감히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가 있겠는가?
기독교의 모세오경과 이슬람의 모세오경이 같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타끼야 전략이다. 꾸란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세오경은 십계명이 없으며, 레위기가 빠져있다. 단지 모세오경에 있는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이슬람의 타끼야 선교전략을 경계해야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극히 일부의 유사성을 마치 뿌리가 같은 종교로 혼동케 해서는 안 된다. 국내 100여개 교회에서 이슬람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모 대학교의 이희수 교수를 강단에 세워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를 강연케 하는 것은 이슬람 타끼야 선교전략에 기독교 안방을 내준 것이다. 성도들의 혼란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선교적인 면에서, 일체의 ‘상호주의’를 배제하고 절대 이슬람주의를 펼치는 상황인데, 여기에 하나님과 알라가 같다는 식으로 이해된다면, 기독교는 이슬람에 의하여 완전히 굴복당할 것이 뻔하다.
흔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관계를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만을 강조하는데, 이 십자군 전쟁의 원인도, 7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슬람교가 무력을 통해 무차별적인 포교 확장으로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이 함락하고, 잇달아 유럽의 기독교 성지들이 무너뜨리면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지금도 이슬람은 끊임없이 세게 도처에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고, 그들은 타끼야 선교전략에 의해 하나님과 알라가 같다는 식의 거짓 선전을 일삼고 있는데, 여기에 기독교의 신학자가 하나님과 알라의 일부 신적 유사성 때문에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기독교의 유일성을 훼손시키고, 무슬림들이 주장하는 바, 이슬람에 의한 침탈명분을 줄 수 있다.
물론, 볼프 교수도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신의 명령에 대한 신념에 따르면서도, 정치적 지붕 아래 평화롭고 건설적인 공생을 할 수는 없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혹자들은 한국교회가 이슬람포비아를 나타내는 것은 그들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며, 잘못된 행동의 결과라고 혹평하고, 정치신학 기반의 연약으로 몰아가지만, 현재 무슬림들의 과격하고, 비인격적이며, 비인간화의 비뚤어진 행동을 보면서도, ‘잘못 이해’를 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든지, 의도적일 것이다.
진정 종교간 대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제언을 할 용기가 있다면, 이슬람교의 가르침이 무엇인데, 왜 저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가를 꾸짖어야 한다. 볼프 교수의 종교 간에 ‘어떻게 더불어 살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무슬림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이해에 있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자칫,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라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차이와 다름이 너무 분명한데, 그러한 부분은 생략한 채, 부분의 비슷한 것을 ‘같음’으로 만든다면 너무도 위험한 행위이다.
사실대로 ‘전혀 다름’에 대한 것을 인정하면서, 종교로서의 평화적 도움과 역할에 대한 대화의 시도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안타까움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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