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네팔 선교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나는 꿈을 잘 믿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잠자리에 들 기전, 이왕이면 꿈 속에서나마 제발 편안하고 심령에 위로가 되는 꿈을 꾸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꿈은 정반대다. 며칠 전에만 해도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다가 불현듯 나타난 진창길에서 주춤거리며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오도가도못한 꿈을 꾸었다. 아님, 아득한 벼랑에 서서 내려가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나의 모습, 어떤 날은 붉은 힌두 가운을 입은 여인들이 난데없이 칼을 뻬어 들고 나타나 나의 복부를 겨냥하고 찌르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깬 적도 있다. 모두 네팔에서 꾼 꿈들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선교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각오하라는 하나님의 묵시로 알지만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어쩐지 아득한 심정이 된다. 그래서 늘 상 비상벨을 울리듯 기도줄을 단단히 붙잡아야 하고 꿈속에서나마 승리하게 해달라는 간절함에 사무친다. 물론 이 곳에 유하는 한 계속되는 잡신들의 영적도전은 끊임없겠지만 저들은 결코 예수님의 진리말씀과 십자가의 희생, 그리고 부활한 생명의 능력을 감히 능가하진 못할 것이다. 이야기를 약간 비약하여,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를 절대가치로 알고 아침저녁 향을 피우며 머리를 조아리는 저들의 지극 정성이라면, 이왕이면 영생하는 하나님의 생명길을 먼저 찾아 진리 되신 예수님의 은혜가 어떠함을 배우고 자아중심의 기복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직심( 선한 양심과 바른 이성 )으로 세상을 통찰한다면 그 직심은 하늘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되어 하는 일 마다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길을 열어갈 것이며 나의 삶이 곧 주님의 삶이 되어 천국의 임재함을 매일같이 증거하고 실현해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사는 동안 사람의 영혼을 속박하는 환경적, 정신적, 영적, 인격적, 각가지 문제의 틈바구니란 누구라도 피 해 갈수 없는 운명적인 삶의 숙제이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자는 무한한 영적 자유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믿음과 소망, 사랑의 자유를 누린다. 이는 곧 참 자유의 본채이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과 그 생명의 능력을 얻어 누리는 약속이며 그럼으로 완전한 자유란, 바로 하나님의 영적 선물로서(주님과의 영적교통이 가능한) 불퇴전의 용기와 의지, 각성과 깨달음으로 성화, 영화되어 어떤 문제로 인한 고통이라도 돌파함으로서 악을 선으로 변화시켜가는 정신적, 영적 자유의 실현자가 되어감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먼저 취해야 할 바 삶의 시금석이란 애초부터 주어진 올바른 진리, 무한한 생명력의 자원, 곧 하나님의 생명길과 진리의 샘을 열어가는 일이다. 진정한 보화란,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가치를 논하며 이를 성공의 평가기준으로 보는 세상기준을 초월한, 바로 내 영혼 안에서 하시라도 구하고 찾는 이에게 주시는 생명의 능력, 곧 성령의 열매와 은사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지혜, 지식, 믿음, 영분별, 능력 행함, 신유, 예언, 방언, 방언통역, 은 은사이며 사랑, 화평, 희락,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맺게 되는 성품이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면서 천국을 찾아가는 길이 결코 순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존하는 세속적 가치관과 여러 종류의 산재한 파워의 저항, 때론 저들과의 정면 대치가 불가피한 현실로 인해 늘 상 진리와는 상반된 정황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바른 진리의 길을 고수한다면 세상에서의 승리, 성공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여 닥아 올 불멸의 나라에 까지 이르면서 인정받는 마침내 그것은 영생과 마주치는 길에 도달하게 되는 바로 시한부의 삶을 영원히 종식시키며 천국을 소유하는 그 길이다. 길을 아는 자, 그리고 먼저 배운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삶의 향방과 진로는 그래서 하늘, 땅처럼 달라지며 종래에는 서로 간 영영 만날 수 없는 상간에 처하게 된다. 공중권세 잡은 영물인 사탄은 미진한 인간의 무지함과, 육신의 소욕을 좇아 행하는 본능적 욕구에 편승하여 하시라도 실족시킬 기회를 노리며 틈새만 나면 그곳을 장악한다. 이미 창세의 아담에서 부터 그리스도 예수에 이르기까지 육신의 소욕과 안목의 정욕에 눈이 가린 인간을 범죄케 하기 위한 사탄의 전략은 예나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그 비극적 결과를 반복하며 야기시킨다. 하물며 창조주 되신 하나님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인간의 교만과 방자함이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아 이후에 전개되는 인류역사 또한 어찌될지 가늠키가 힘들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정된 지식, 지혜로 분별, 예측하는 미래란 단지 예측일 뿐- 더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무엇보다 먼저 확실히 알아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근거로 한 계시와 약속, 그리고 예지, 예언, 바로 성경말씀이다. 천지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곧 우리 영혼의 관리자이며 또한 생명의 근원이시니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 걸음을 당신께서 친히 인도하심으로 사람이 작정한 때와 하나님의 때는 그래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할렐루야-
2015년 12월14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김상봉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