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푸른초장 맑은시내-조용목 목사2016-03-04 16:10
작성자 Level 8

‘날마다 죽는 사람’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어떤 의미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였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 바울 사도가 의도한 뜻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는 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부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씀은 바울 사도의 활동에 따르는 위험과 곤란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늘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나, 유대인 회당이든 낯선 이방 도시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혈통과 율법 행위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우상과 사신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섬기라고 힘써 외쳤습니다. 동분서주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동족과 이방인에게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 맞고 투옥되었으며 죽을 뻔한 위기를 수없이 겪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가 자신을 매일 죽음의 위험에 노출시키며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그의 말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닌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둘째,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씀은 옛 사람의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성령을 거스르는 옛 사람의 기질과 본성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교만과 탐욕입니다. 교만과 탐욕은 죄악 된 모든 행동의 뿌리입니다. 교만한 본성은 무엇이든 자신의 의견, 자신의 주장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방법대로 행동하는 행위가 교만입니다. 그리고 옛 사람의 본성인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본성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게 될 때 우리를 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는 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생에게 죽음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죽기 시작합니다. 하루를 살았다는 말은 하루만큼 생명이 단축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다만 각 사람이 죽음에 도달하는 지점이 일정하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이 죽음의 두려움에 예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사람은 사망의 종노릇을 합니다. 이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쇠사슬에 매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된 성도들이라도 이 세상에서의 주어진 삶의 날수는 한정된 것이며 그 날들이 쉬지 않고 지나갑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성도들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한 매일 경건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또한 날마다 죽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유념하므로 귀한 날들을 감격과 기쁨으로 장식하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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