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온선칼럼-문찬우 목사2014-01-24 23:00
작성자 Level 8

둥근 것이 더 모나다
고린도후서 12: 9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에서 가르치는 서현 교수가 쓴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효형출판사, 1998)는 건축 관련 전문서적이지만 집짓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읽어볼만합니다. 누구에게나 쉽고 재밌고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 이유는,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이 존재하듯,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은 건축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살다가 집에서 죽습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홈리스(homeless)조차도 신문지나 종이박스로 자기 영역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단순한 건축학적 개념으로 분류하자면,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셈입니다. 건축가와 건축희망자.

그렇다면 건축(建築)이란 무엇일까요? 본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자기 영역을 만드는 일이지만 동시에 세상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비록 나만의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실내만 존재하는 집은 없습니다. 집을 세움과 동시에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령 지독한 한 인간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칩거하고 산다고 해도 분명 그 집에는 문이 있고 바깥과 접하고 있는 벽이 있기 마련입니다. 문도 벽도 없앴다면 그것은 집이 아닌 무덤입니다. 분명히 건축이란 개인의 안식과 공동의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맥락 안에서 저자는 강렬한 주장을 합니다. “건축에서는 원기둥이 각기둥 보다 고집이 세고 타협을 모른다.” 둥근 것이 모난 것보다 더 비(非)사회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말입니다. 각기둥은 그 옆에 벽을 붙이는 것이 용이하지만 원기둥은 주변과 어울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도심에서 원통형 빌딩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세상사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나지 않고 둥글게 보이는 것 같지만 완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세련되며 단정한 삶을 살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회의 원기둥들입니다.

성경에는‘오이코도메(oikodome)’라는 헬라어가 나옵니다. 그것은 덕(德)을 세운다는 뜻으로, 공교롭게도, 직역하면 건축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신앙 인격을 형성할 때, 과연 무엇을 고려할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일반 건축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바로‘개인의 안식과 공동의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혼자만 잘나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완고한 원기둥이 아닌, 연약함과 고난을 통해 지니게 된 흠결로 이웃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각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집을 짓는다고 다 건축은 아닙니다. 안팎에 대한 균형 잡힌 고민이 있을 때 진정한 건축은 시작됩니다. 그런 깊은 고민이 있을 때 참된‘성화(聖化)’가 시작됩니다.

경기북지방회 온선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