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온선칼럼-문찬우 목사2015-05-28 11:40
작성자 Level 8

Non rien de rien (농 히앙 드 히앙)
마태복음 25:1 - 13

아직 유월인데, 34도라니. 날씨가 미친 거야. 아오, 어쩌라고. 여기저기서 우리 반 아이들이 내뱉는 소리가 낡은 프린터 종이 뽑는 소리처럼 툭툭 거리고 튀어나왔다. 몸 전체가 폐타이어로 느껴질 정도로 무디고 매집 강하기로 유명한 지광씨(우리들은 영어선생인 김지연 담임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조차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찌든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탁. 지광씨가 밀가루 반죽을 치듯 책을 덮었다. 얘들아 덥지? 잠시 쉬었다 하자. 누가 시원한 노래나 한 곡 해라. 지광씨가 미쳤나보다. 그러나 아이들은 속내를 감추고 일제히 외쳤다. 예에! 보통 다른 시간이라면 아이들은 시큰둥했겠지만, 지광씨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에는 엄청난 리엑션을 했다. 누가 할래?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조승예, 조승예, 조승예를 외쳤다.

조승예는 누군가? 우리 반 반장이다. 그리고 언젠가 야자시간에 우리들이 떠든다고 담임에게 일러바친 열라 재수 없는 전교 3등이다. (그 사건으로 아이들은 그 전교 3등을-왕따는 못시키고-은따시켰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생긴 건 예쁜데 불쾌한 얼굴이다. 혼자 두꺼운 불어책만 파고 있다. (프랑스어교수가 꿈이란 말을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은따를 당하는 그 인간이 측은해 보여서 말을 건낸 적이 있다. 승예야. 같이 매점 갈래? 미안. 나 책 읽을 게 있어. 이건 또 뭔가. 내 얼굴은 붉어졌고, 그 계집애 다시는 상종 안 하기로 다짐했다. 모두 싫어하는 전교 3등, 그것이 바로 조승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 되어 외친 거다. 조승예, 조승예, 조승예.

오, 그래?  조승예가 노래도 잘 하니? 승예야. 한 번 불러볼래? 지광씨가 욘사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조승예도 밀가루 반죽을 치듯 탁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표정변화도 없이 일어나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농 히앙 드 히앙 (Non rien de rien-나중에 찾아봤다). 모두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크헤헤헤헤. 미치겠다. 무슨 샹송을 불러! 와, 완전, 사차원. 쟤, 또라이 아냐? 아이들의 목소리가 인쇄소용 프린터 소리처럼 우다다, 쏟아졌다. 심지어 우린 책상을 치며 발을 구르기도 했지만, 승예는 가냘픈 소리로 계속 노래했고, 지광씨는 욘사마에서 스타킹 진행자 강호동처럼 터질듯 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샹송이 정점에 다다를 무렵, 우리들의 웃음은 야유가 아닌 혼란을 가릴 은폐도구로 변해갔다. 이유는 몰라도, 다들 뭔가 진 것 같다는 감을 각자의 페로몬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젠장. 1987년 여름이었다.

2006년, 대략 초여름. 그날따라 더 길고 낯설게 느껴지던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두 가로등 사이에 걸려있는 작은 현수막을 보았다. 경축 한불수교 120주년. 문득 잊고 있던 조승예가 생각났다. 그녀는 불어과 교수가 되었을까? 혹시 파리나 리옹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다. 만나는 동창도 드문데다가, 조승예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동창은 더 드문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의 50여명의 학생들 중 자신의 시간과 삶을 살았던 사람은 오직 ‘농 히앙 드 히앙’을 불렀던 조승예였다. “Non rien de rien - 아뇨,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같잖은 차별의식과 의리 따위로 승예의 세계를 비웃고, 그녀의 용감한 자기표현에 야유를 보냈었던 우리들은 그날,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내용은 사실을 소설로 재구성한 글이므로 등장인물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경기북지방회 온선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