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조용목 목사 교회언론회 정기총회 설교2010-11-04 10:40
작성자 Level 8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명실상부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언론회 10주년 감사예배 및 제9차 총회

고린도후서 5장 17절

런던의 한 공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날씨가 으스스하게 차가웠습니다. 이럴 때면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나기 마련입니다. 그 때 홍차를 파는 소년이 나타나 소리쳤습니다.
<;여기 홍차가 있습니다. 뜨끈뜨끈한 홍차가 있습니다>; 한 신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소년을 불렀습니다. <;마침 잘 되었다. 이리 오너라 뜨끈뜨끈한 홍차 한잔 다오>;
차 값을 지불한 신사가 소년으로부터 컵에 가득 부은 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다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야 이 녀석아, 이건 뜨근뜨근한 홍차가 아니라 차가운 냉차군, 왜 사람을 속여>;
그러자 소년이 천연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이 홍차의 이름이 뜨끈뜨끈한 홍차입니다>;
홍차 파는 소년이 고의로 속이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지 아니한 홍차가 있다는 사실을 그 신사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명실상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노력해서 얻는 신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입니다. 존재의 바탕에서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였습니다. 빛은 특성이 있고 그 특성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에게는 특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혁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개혁이란 새롭게 뜯어 고친다는 뜻이지만 교회는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새로움을 그대로 지켜 나가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본디의 모습을 가리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그 특성들 중에 핵심 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되었음을 말합니다. 차별화하는 것과 구별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릇된 차별화를 없애는 일에 힘써야 하나 구별되게 살도록 진력해야 합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이 구호의 <;구별 말고>;라는 표현에는 아들 딸을 <;차별하는>; 관습과 세태의 현실상황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러나 <;차별 말고>;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등은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종구별, 남녀구별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합니다. 장유유서, 부부유별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도입니다. 거룩한 자라는 말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존재의 뿌리이고 중심으로서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을 포괄합니다. <;거룩>;이라는 낱말은 일차적으로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 자신이 (완전히 다르게 wholly otherness) 구별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거룩이 없습니다. 피조물은 어떠한 방법과 노력으로도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것을 말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구별됨을 뜻합니다.

거룩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거룩의 원어 '하기오스'의 기본 뜻은 '다르다' 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과 다른 점이 있어야 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고린후서 6장 17절과 18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구별이 무너지면 세속화됩니다. 무분별하게 세상종교와 손을 잡거나 세속문화를 받아들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변질되어 버립니다.

수년 전 일본의 오순절 교회 협의체에서 가지는 전국대회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더 보태려고 하지말고 본래의 모습이 아닌 것을 제거하도록 하여야 하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고 성령충만 하여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대회가 끝나 갈 무렵 대회를 주관하는 임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펜티코스트 운동이 순수하고 뜨거웠는데 지금에 와서는 펜티코스트가 '변태코스트'가 되고 말았다" "교회부흥세미나가 인위적인 교회성장 기술자 훈련교육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종교와 세속문화의 침투로 그 본연의 모습이 가리어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둘째,  명예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운데 명성 추구는 이생의 자랑에 해당됩니다. 명성이란 낱말과 명예라는 낱말은 비슷한 뜻을 가지지만 그러나 적용면에서는 현저히 다릅니다. 명성이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널리 이름이알려 지는 것을 뜻합니다. 명예는 사람들로부터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품위를 말한다. 이러한 낱말의 뜻과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뜻은 차이가 있습니다.
명성이란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서 반드시 좋은 평판에 한정하지 않습니다. 좋고 나쁨이나 아름다움과 추함과는 관계없이 유명한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명예란 존중되어야 할 성격을지닌 인격이나 사물과 관련됩니다. <;명성이 자자하다>;는 표현은 있어도 <;명예가 자자하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명성을 잃는다고 하여 반드시 명예가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물이 지금까지 비교될 것이 없는 위치를 차지하였는데 그 보다 더 한 것이 등장하게 되면 지금까지 가졌던 명성을 잃게 됩니다. 뉴욕 맨해턴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그러합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크고 높은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층 건물이라는 명성을 잃은 지 오래 됩니다. 최고 제일로 알려진 그 무엇이 그 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어 지금까지 가졌던 명성을 잃게 된다 해서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훼손이라는 말은 있어도 명성훼손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명예란 명성과 연관되기도 하지만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명예훼손을 당할 경우 명성이 알려져 있는 정도에 비례하여 그 충격과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법정에서 다루는 명예훼손죄의 판결은 객관명문화 된 법에 의거한 것이므로 객관성이 다분히 개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훼손을 당한 당사자가 느끼는 정도는 일정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성직자는 명성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 이는 바벨성을 쌓은 무리들의 캐치프레이즈 였습니다. 그들은 인본주의적인 명성에 대한 과대한 욕망을 이루려고 시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도모를 좌절 시키고 그 경영이허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교역자가 명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사이비한 단체에 몸을 담게 되기 쉽습니다. 이단들과도 손을 잡습니다. 그릇된 교리에 대해 눈을 감습니다.
성직자들은 지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의 거취가 미치는 영향이 심대합니다. 성직자는 물론 그리스도인은 명예를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명성만 얻을 수 있다면 명예는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을 세상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비전을 크게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큰 만큼 탐심이 틈탈 여지가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명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세속이나 그릇된 교리와 타협하게 될 위험이 다분히 따르게 됩니다. 성직자와 모든 성도들은 명예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셋째, 정직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살도록 하여 주십니다. 자연법칙을 주신 것이 그러합니다. 계절과 밤낮을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봄이 와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중에 갑자기 겨울이 되어 버리고, 눈보라가 치고 얼음이 얼더니 폭염이 내려 쬐는 여름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도저히 계절의 변화가 예측 불가능하게 된다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히브리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만일 하나님께 인생들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침묵하신다면 사람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인생들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행하실 일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록된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소망과 확신은 하나님의 진실함에 근거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언약을 변개하신다면 성경은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였고, 시편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하였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그 나라를 거짓 위에 세웁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은 결국 심판을 받고 무너집니다. 진리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염치란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짐승은 염치를 모릅니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낯도 붉히지 않고 견강부회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협약서, 서약서, 확인서, 각서등에 서명하고는 거기에 상반되는 행동을 하여 상대를 낭패에 빠트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목전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는 처세술은 세속적 처세술입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는 융통성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하여 지고 있습니다. 약속과 신의를 고집하는 사람에 대해근본주의니 원칙주의니 융통성이 없느니 라고 비꼬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비판이 옳은가 하나님 앞에서 판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비방과 냉대와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것이 융통성이 없는 소치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기꺼이 융통성 없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악과 불의와 거짓에 타협하는 융통성을 분토같이 여기고 배격해야 합니다. 신의와 진실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기만과 술수를 행하는 자를 백안시해야 합니다.
의와 진실을 외면한 채 목회성공의 판단기준을 물량과 숫자와 외형에만 두는 것은 교회의 타락을 가속화 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막대한 재정능력으로 크고 화려한 행사를 한다든지, 자선구제를 크게 선전하여 과시하는 것으로 불의와 기만을 포장하고 세를 과시하며 기고만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식언을 예사로 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가 곤란한 것은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도자가 예측 불허한 행동을 하면 그 조직과 체제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불안합니다. 그런 지도자를 추종하려고 하면 기회주의자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과 함께 일하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식언하고 법과 절차를 무시하며 견강부회하는 폐습은 척결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과 그 공동체인 교회는 그 본질과 특성인 거룩, 명예, 정직을 귀중하게 여겨야 하며 이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Holiness, Honor, Honesty 3H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명실상부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은혜와진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