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올곧은 목회자-임영신 목사 설교=충서지방회장2012-07-20 08:46
작성자 Level 8

올곧은 목회자

고전4:1-5

임영신 목사
교단 충서지방회장
부활교회 담임

고전 1:10-12절을 보면 고린도교회는 삼분오열되어 계파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지지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 베드로를 지지하고 있는 고린도교인, 아볼로를 지지하고 있는 고린도교인 등등...
글로에를 통하여 계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들은 바울 사도가 4:1-2절에서 말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일꾼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합니다. 베드로, 아볼로, 그리고 나 바울 우리들은 예수님의 일꾼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높여주고 따르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일 뿐입니다.

첫째로 올곧은 목회자는 자신이 예수님의 일꾼인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일꾼이라고 말하는 “휘페레테스”라는 단어는 1인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원한 2인자입니다. 영원한 조수입니다. 영원토록 보조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휘페레테스의 사람들이 1인자가 되면 그 사람이 속한 곳은 망합니다. 휘페레테스가 선장이 되면 배는 제대로 갈수가 없습니다. 휘페레테스의 사람은 노를 저어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휘페레테스의 사람이 회장이 되면 그 회사는 틀림없이 망합니다. 그 사람은 비서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휘페레테스의 사람들이 교회의 머리가 되면 교회는 망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만약 바울 아볼로 베드로사도가 휘페레테스의 일군으로 무장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그 시대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휘페레테스의 목회자는 오직 예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바울사도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의 올곧은 목회자가 되는 길이 바울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휘페레테스의 일꾼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올곧은 목회자가 되는 길은 사람들의 판단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교도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극과극의 신앙관 안에서 변화된 사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바울 사도에 대한 담론도 극과 극의 관점에서 회자되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자마자 즉시로 전도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 바울 사도의 신앙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스데반의 죽음에 가담한 바울을 생각하면서 살인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자신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 일들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3).
바울 사도는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울고 웃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의 판단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하시는 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판단하시는 정확한 판단자이신 예수님께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빌 3:12을 보면“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말합니다. 올곧은 목회자는 예수님을 좇아가기에 바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좇아가기에 바빠 사람들의 판단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의 모임에 가담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에게, 그리고 그의 말씀에 사로잡혀있었던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판단을 좇아가려고 예수님께 눈 돌릴 겨를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와 우리의 다른 점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울고 웃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의 판단을 따라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이곳으로 모였다가 또 다른 사람이 조금 다른 말을 하면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자기에게 조금 이익이 되는 사람의 말들을 좇아 줏대 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합니다. 사람을 따라가고 이익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이 자기를 머리로 삼으려고 하는데도  그들을 좇아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판단에 치우지지 않는 바울사도의 올곧은 목회관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사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올곧은 목회자의 길에서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로 올곧은 목회자는 자책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4:4).
롬7:24을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서 심히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사망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자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심히 자책하고 있던 바울이 오늘 말씀에 자책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입니까? 그것에 대한 답은 롬7:25절과 8:1-2절을 통하여 답해주고 있습니다.
2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롬8:1-2절에서 말씀하기를 예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에 대하여 자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자책할 죄가 없어서가 아니고 회개와 용서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바울 사도 같은 사도라 할지라도 목회를 하다보면 자책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잘못하고 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보혈로 덮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죄까지도 용서를 받고 자신이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많은 자책감을 가지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돌아서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덮임을 받고 선포하겠습니다. 자책할 것이 없노라고...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돌아설 줄 모르는 교만한 목회자가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올곧은 목회자라는 주님의 칭찬을 듣기를 소망하면서 이 길을 달려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