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백두산 산삼(山蔘) 한 뿌리를 먹고2010-09-09 09:53
작성자 Level 8

이원희 목사

초가을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스레할 즘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라며 수줍은 젊은 여아의 음성이었고 애절한 간청의 부탁 전화이었다.

백두산이 있는 장백산에서 캔 몸에 좋은 산삼을 갖고 왔는데 선생님이 꼭 와서 보아주시고 한 뿌리만

사주시면 좋겠다는 절규 같은 호소의 전화이었다. 약 40년 간 한중 수교가 단절 되었다가 수교가 트여 찾아 온 조선족 동포는 어떤 분인가 싶은 호기심도 있었고 나에게는 산삼 한 뿌리를 먹는다는 팔자나 인연은 아예 없는 것으로 알고 사는 사람에게 민족의 영산 백두산 산삼 한 뿌리를 만나고 산삼을 사먹으라니? 조선족 동포와 백두산 산삼 둘 다 호기심이 생겨 나가 보았다. 위치를 알려준 대로 물어물어 찾아 간 곳은 서울 성북동 어느 민가 집이었다. 백두산 산삼에 대한 신비로운 마음으로 나갔다가 그만 산삼을 보는 순간 가삼(家蔘)아니면 가삼(假蔘)이라 금방 의심이 생기고 뒤물러서 되돌아오고 싶었다. 산삼 진위 감별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 산삼이 너무 많아 한 보자기를 열어 보이는데 놀라버렸다. 백두산에서는 산삼을 캐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박스에 퍼 담아 오는가 싶었다.② 어쩌면 산삼 크기와 길이가 하나 같이 꼭 같아 볼펜 묶음, 모내기 때 모 침 같아 산삼이라는 신심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③ 백두산 산삼 한 뿌리에 값이 2만원이라고 했다. 마포에 여름 보신탕 집 수육 한 접시에도 2만 7천 원 하는데 백두산 산삼 한 뿌리가 개고기 한 접시 값만도 아닌 2만원이라니 휑하니 돌아서 올 량인 데 중국에서 막 건너와서 서울에 당장 채류 할 돈과 여비가 떨어졌으니 선생님이 한 뿌리만 팔아 달라는 애걸을 뿌리 칠 수 없었다. 어쩌면 좋아? 상품은 의심이 생겨 살 여지가 없지만 딱한 사정은 거절을 할 수 없어 2만원을 건네주고 백두산 산삼 한 뿌리를 샀다.

그리고 즉석에서 대충 씻어 백두산 산삼 한 뿌리를 씹어 꿀꺽 삼켜버렸다. 먹고 나서 흥정 때 보다 더 의심이 생겼다. 도라지 더덕도 쓴 맛이 있고 향이 있는데 백두산 산삼은 아무런 맛도 향기도 없는 무미 무취 무색이었다. 오이, 배추 뿌리를 먹어도 무슨 냄새와 맛이 있는데 내가 먹은 산삼은 맛과 향이 백두산이 미리 다 흡수해버렸는지 아무런 맛과 향이 없는 어묵 맛이었다. 헐값에 허공 같은 맹물 맛 산삼 한 뿌리를 먹고 백세가 넘는 장수 건강에 크나 큰 약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오지 않았다. 어디 누구에게도 나는 이레 뵈도 백두산 산삼 한 뿌리를 먹은 남자라는 명암을 내 밀 수가 양심상 허락지 않았다. 산삼 먹은 입은 침묵을 지켜 영구히 입을 닫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고처 먹었다. ‘백두산 산삼 한 뿌리’ 라는 그 이름을 먹기로 했고 그 이름은 확실하게 먹었다. 신앙은 신비했다. 백두산 산삼 한 뿌리라는 그 이름을 먹었다고 믿는 나에게 그 때 부터 마음도 몸도 화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의료 보험은 매월 178,000 원을 납부하고는 산삼 먹은 그 이후에 병원에 간 적도 없고 소화제, 비타민C 한 알 먹은 적이 없었다.(2010.5.5. 미국에 가서 재미 교포가 비타민C 선물을 하여 주어 그 분의 성의에 몇 알을 먹어 본 이외에는) 커피는 설탕을 두 세 스푼을 푹 푹 퍼 넣어 설탕에 말아 마셔도 아직은 당뇨 혈압 걱정은 없다. 이것이 다 먼저는 주님의 은혜이고 그 다음은 백두산 산삼 한 뿌리라는 그 이름을 먹은 덕분 아닌가?

의료 보험은 건강 감사헌금으로 생각하고 허약한 이웃 분들을 돕는 마음으로 매월 납부 하면 기쁨이 배가 된다. 백두산산삼 한 뿌리라는 이름 보다 더 신비 신귀 한 이름이 있다.

종가 집 정통통합교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이다. 지 정 의 라는 온전한 인격의 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주 무대인 정통통합교단이라는 이름에 발만 드려 놓고 있어도 성령님의 축복 대박이 터질 것인데 간혹 발을 빼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요 나무에서 떨어지면 마름과 불 살음 이라는 양단의 말씀을 예사로 보는가 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