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칼럼

제목사람이냐? 하나님이냐?2010-06-24 09:11
작성자 Level 8

사사기 7장 1절, 2절
- 교단총회장 송한영 목사

바쁘신 중에도 원근각처에서 교단을 사랑해서 오늘 행정세미나에 참석하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설교하려고 하는 제목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이 늘 있습니다. 온갖 괴로움은 우리의 영혼을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을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고민은 무슨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냐 인간의 수단 방법을 의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어네이트 훼밍웨이는 인생에는 네 가지 큰 풍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환경에서 오는 자연적 재해 풍랑이다. 둘째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오는 인간갈등의 풍랑이다. 셋째는, 질병으로 당하는 고난의 풍랑이다. 넷째는, 자기 마음속에서 불어오는 마음의 풍랑이다 하였습니다. 이런 풍랑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분과 그 풍랑에서 이겨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그 가르침을 수 없이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지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도우심 뿐입니다. 인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겪는 가장 큰 갈등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를 의지하고 살 것이냐 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를 의지하고 살 것이냐 라는 결정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성경말씀은 기드온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군사를 모집하여 전쟁을 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군사를 모집하니 3만 2천명이 왔습니다.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 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자긍하며 교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려고 선별작업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했더니 이만 이천 명이 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다음엔 하나님이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시험하게 했습니다. 물을 손으로 떠서 먹는 자와  무릎을 꿇고 먹는 자가 있었습니다. 물을 손으로 떠서 먹는 자는 300명 이었습니다. 이들만 데리고 싸우러 가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순종했더니 승리했습니다. 할렐루야 ! 기드온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정한 시간, 하나님이 정한 장소, 하나님이 정한 방법을 따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 사건의 교훈은 명백합니다. 하나님 말씀 편에 설 것이냐 사람의 지혜 편에 설 것이냐 라는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 편에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어떤 경우에 하나님 뜻을 따르려면 곤란과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숫자나 세력을 따르려는 유혹으로 인해 갈등하기도 합니다. 답은 확실합니다. 당장 손해가 나도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입니다. 욥기 8장1절 이하에는 빌닷 이라는 욥의 친구의 권면이 나옵니다. 5절에 보니 네가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라 하였습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환경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보라는 것입니다. 정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마태복음 5장 8절에 말씀하셨고 신명기 6장 18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잠언서 14장 11절에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했습니다. 정직하고 청결한 마음을 하나님이 좋아 하시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해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내버려야 합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정직과 청결을 지켰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섰다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다시 창대케 되었습니다. 안토니 후크만은 그의 책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인간을 정의하기를 피조 된 인격체로서의 인간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인격체로 정의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 입니다. 인격에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라는 삼요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격에서 하나님의 품성과 향기가 흘러 나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인간을 피조물로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피조 된 존재이기 때문에 한 순간도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오래 사는 것, 부요한 것, 권세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난해도, 무식해도, 연약해도 하나님과 연결된 피조물의 삶은 그 자체가 영광이요 복이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인간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 갈등 중에 하나가 누구를 의지하기로 하느냐 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모세와 비교한다면 여호수아 갈렙은 주연이 아닙니다. 조연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서므로 이스라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민족을 살렸고 이스라엘 역사의 방향을 틀어놓았습니다. 이 시대에 주연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편에 서는 조연도 중요합니다. 영화는 훌륭한 조연들로 인해 빛나게 됩니다. 교회는 목회자를 잘 돕는 성도님들로 인해 훌륭한 교회가 됩니다. 교단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단도 주연과 조연 모두 역할을 잘 할 때 부흥 발전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연과 조연은 역할 분담이 다를 뿐 그 역할의 중요성은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진리와 진실을 택하고 정직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교역자들이 모인 교단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단입니다.